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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뷰 캠프그라운드

캘리포니아의 낙원

by 빙수 Jan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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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view Campground, CA.

07.15.2019.


우리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캠프그라운드에 대한 이야기.

이 곳은 정말로 특별한 곳이다. Los Angeles에서 북쪽으로 다섯 시간 정도를 달려 해발 8500ft (2600m)에 위치한 캠프그라운드로, 너무나 조용, 한적하고, 광해가 차단되어 있으며, 높은 고도 덕에 대기 상태도 좋아 한여름 시원하게 별을 보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어쩌다 알게 된 이 그랜드뷰 캠프그라운드를 우리는 늘 그리곤 한다.


첫쨋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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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을 다닐수록 점차 일찍 집을 나서게 된다. 이왕 떠나는 것 최대한 캠핑을 즐기는 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러나 들뜬 마음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새벽 알람에 눈을 뜨면 왜 이렇게나 따뜻하고 포근한 침대와 집을 두고 우리는 굳이 몇 시간을 운전하여 씻을수도 없고, 요리 도구도 제한되어 있고, 돈도 들고, 어떠한 통신도 되지 않고, 잠자리도 그다지 편하지 않은 곳으로 떠나려는지 회의감이 들어 한 4분 정도 더 잠에 빠진다. 그러다가 결국 이불을 박차고 새벽의 쌀쌀한 공기를 맞이하며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전날 먹고 남은 닭가슴살, 깻잎지, 계란볶음을 도시락 삼아 챙겼다. 마당에 활짝 핀 수국 꽃송이들은 어차피 우리가 다녀오는 사이에 지게 될테니, 물꽂이를 하여 우리의 여정에 함께하는 반려 수국이 되어주었다. 그제야 이제 막 떠오르는 아주 이른 새벽의 햇살을 맞으며 먼 길을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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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간쯤 달렸을 무렵, 본격적으로 가파른 지형을 맞이하기 바로 전 Big Pine이라는 작은 도시엔 Copper Top이란 어마어마한 바베큐집이 자리를 잡고 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바베큐에 세상 맛있는 매콤한 칠리. 우리가 그랜드뷰에 찾아가는 이유들 중에는 분명히 이 Copper Top이 존재한다. 달달하게 녹아내리는 립 (rib), 씹는 맛이 일품인 트라이팁 (tri-tip), 그리고 빵에 올려 먹기 좋은, 양 넉넉한 풀드 포크 (Pulled p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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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히 배를 채은 후 남은 한 시간 정도를 가파른 오프로드 오르막길을 올라 캠프그라운데 도착하였다. 아주 북적북적한 주말이라 사륜구동으로도 간신히 다다를만한 아주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대충 짐을 풀어놓고 완전한 고요, 눈 앞의 푸르름, 그리고 저 멀리 눈 덮인 산을 눈에 담으며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왼쪽: 'Stimulus', Eagle Rock Breweryazy DIPA with coffee

은은한 커피향이 인상깊었던 맥주.

오른쪽: 'The Juice is Real', Local Craft Beer, Hazy DIPA

오렌지 향이 폭발하던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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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테이블도, 화장실도, 어떤 문명의 시설도 없었다.

대신 그 곳에는 예쁜 꽃들과 풀들이 터전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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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다육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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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식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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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끝없이 사랑하는 그대는 따뜻한 빛을 받아 더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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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우리가 며칠 동안 지낼 터전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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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별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망원경을 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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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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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의 우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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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을 오면 그렇게 음식이 맛있을 수가 없다. 이번엔 오뎅탕을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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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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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 광축을 정렬할 겸, 얇은 달을 관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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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떠오르는 별들은 십년째 우리로 하여금 가슴이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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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은하수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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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를 즐겨보는 척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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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하늘은 정말 아름답다. 그리고 별들은 언제나 기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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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밤은 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아주 짧다. 금방 날이 밝아와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둘쨋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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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고 새소리와 뜨거운 햇살에 잠이 깨어 아침을 먹는다. 미리 집에서 준비하여 구워온 스콘과 시원한 과일.

얼그레이 스콘. 블렉베리 라임 스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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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지도에 자세히 표기되지 않은 곳을 탐험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거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 요즘 세상에서 이런 새로운 장소를 찾아보는 일은 제법 설레는 일이다. 길을 잃고 무작정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깊고 외진 곳에 위치한 고즈넉하고 멋진 캠프사이트를 찾았다. 오랜 기간동안 살 수 있을 것도 같이 아늑하고 편안한 캠프사이트에는 주변의 큰 돌들로 쌓아 만든 파이어핏, 그리고 왔다간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나무들을 이용해서 만들고 고친 듯한 낡은 스탠딩 테이블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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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귀찮은 일이었지만 우리는 캠프사이트를 옮기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왔다갔다 짐을 옮기고 세팅을 하고 나니 너무나 편안한, 마치 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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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동안 아내의 부엌이 되어주었던 멋진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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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멋진 곳에 텐트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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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이트를 올겼으니 서로 수고했다며 맥주를 나눠 마신다.


왼쪽: 'Family Geminus', State Brewing, Hazy DIPA 

보드라운 오렌지 쉐이크 맥주. 

오른쪽: 'Vice Nectarine + Cherry', Wild Barrel Brewing, Berlinerweiss 

상큼하고 달콤한 과일주스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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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찾아온 나비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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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먹에 흔들흔들 앉아 책을 읽기도 한다.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그러다 보면 시간은 잘도 흘러 금세 저녁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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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매콤하고 달콤한 고추장찌개.

고기가 잔뜩, 두부, 파, 감자, 떡, 라면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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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으로 마쉬멜로를 구워서 초콜렛, 크래커와 함께 스모어를 만들어 먹는다.

마쉬멜로가 구워지며 기다리는 동안 느끼는 바람의 시원함, 불의 따스함, 향기, 장작이 타는 소리, 마쉬멜로에 집중하느라 우리 사이에 찾아오는 정적, 그 뒤로 들려오는 Paul Desmond의 음악.

이 모든 감각이 아주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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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렇게 해가 진다. 너무나 아쉽게도 금방.

하지만 또다시 이렇게나 멋진 밤 하늘, 별 하늘, 은하수가 펼쳐진다.


타임랩스

시간은 흐른다. 별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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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늘 아래 관측도 열심히 해 본다.

처음 사용해 본 O-III 필터로 베일 성운을 관측하니 그렇게나 멋질 수가 없었다.

가슴이 마구 두근두근거려서 이상할 정도였다. 봐도 봐도 그 선명한 베일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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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을 등진 커다란 나무들의 실루엣은 늘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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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낮아지니 다시 따뜻하게 배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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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중한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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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먹에 누워 은하수를 바라본다.

흔들흔들 별의 강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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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한 가운데 나무 기둥 사이, 목성.

15초 노출 중 12초 즈음, 목성이 지평선 뒤로 넘어갔다.

목성이 지는 그 순간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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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하늘이 굉장히 화려하고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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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이 별을 보며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오늘 날에도 마찬가지이다.

날이 밝을 때까지 관측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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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찾아온다.


셋쨋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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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스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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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늘은 조금 쌀쌀해 낭 안에 폭 감싸인 그대는 해먹에 누워서 아침 잠을 청해 본다.

그 옆에 앉아 마저 책을 읽으며 간간히 해먹을 흔들어 준다.

음악: 이루마의 H.I.S. Monologue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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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워지고 잠이 깨면 또 맥주. 


왼쪽: 'Lil Nap', Prairie Artisan Ales, Sour 

깊은 블랙베리 향이 느껴지는 사워.

오른쪽: 'Gamelan Pop', Grimm Brewing, Sour Ale 

굉장히 독특하게 새콤하고 씁쓸한 자몽 주스 같은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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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수국은 예쁘게 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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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해는 또 넘어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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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힐링 해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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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저녁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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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한 닭고기 스튜.

신기하게도 밥과 김치가 어찌나 잘 어울렸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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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금방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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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넘어감과 함께 순식간에 쌀쌀해져 일찌감치 불을 피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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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멋진 나무들 사이로 별들이 총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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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고마워요.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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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몸을 덥히려 불을 피운다.

불의 열기가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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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하건대 그대에겐 수퍼파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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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금방 날이 밝아온다.


마지막, 넷쨋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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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해먹에서의 뷰를 눈과 마음과 카메라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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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테이블도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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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저 뒹굴거리고 정리를 마친다.

평안과 행복, 그리고 아쉬움을 가득 안고 돌아오는 길을 떠난다.

그렇게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는 것이다.


현실에 돌아오고 나면 한동안 캠핑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캠핑을 다녀와 며칠만에 마주하는 우리의 집, 고양이들, 그리고 일상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중한지 느끼게 된다. 또 한동안 열심히 하루 하루 살아갈 의지가 솟아나고, 또 한 템포 쉬면서 다음 캠핑을 그린다. 이 다음엔 또 언제, 어디로 떠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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