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빙수 Jul 13. 2020

부대찌개 이야기

입에 착착 감기는 시원한 얼큰함

 ...
스토니 포인트는 나에게도 그러하였듯 이 지역의 많은 이들이 처음으로 아웃도어 클라이밍을 하게 되는 곳이다. LA 도심에서 (교통 체증이 없을 때엔) 30분 정도면 찾을 수 있고, 어찌 되었건 수백 개가 넘는 루트/문제들이 존재하고, 역사적 의미까지 있으니, 루트/문제들의 질이 조금 미묘하더라도 이 주변에서 클라이밍을 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찾게 되는, 그런 곳이다.
 내가 어릴 적, 동네 상가 지하에 돈까스 집들이 알게 모르게 유명했다. 빈대떡 보다도 얇은 두께, 그중에도 튀김옷이 4/5를 차지했으나, 그래도 얼굴만 한 면적의 돈까스 두 장, 주인아줌마와 친해지면 세 장을 5000원이면 먹을 수 있었다. 마카로니와 양배추 샐러드, 깍두기 몇 개, 밥, 게다가 친구와 같이 오면 미원 맛 가득한 부대찌개 또한 포함이었다. 그것이 요즘 그렇게 핫하다는 <연돈>의 돈까스라던지 그런 것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내가 살던 동네의 중, 고등학생들에게 축복과 같은, '우리 동네에는 이런 거 있다!'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존재였다. 스토니 포인트가 이 지역 클라이머들에겐 바로 그런 존재였다.
...

 얼마 전 문득 생각난 부대찌개에 대한 추억들을 떠올리려니, 생각해보면 돈까스집 외에도 그 동네 지하상가에서는 부대찌개가 기본값이었다. 만두집에서도, 분식집에서도 팔천 원쯤 이상을 시키면 부대찌개, 아니, 부대찌'게'가 공짜로 딸려 나왔다. 생선 요리를 썩 좋아하지 않던 시절, 생선 조림 집에서 엄마가 갈치조림을 시키면 나는 서비스로 나온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얼큰하고 짭짤하며 햄과 소세지, 가공육의 감칠맛이 가득한 부대찌개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디를 가도 존재하는 스타벅스가 아직도 들어서지 않았던 내가 살던 동네에 언젠가 '놀부' 보쌈, 부대찌개 체인이 자리 잡았다. 자주는 아니어도 간간히 점심으로 보쌈을 먹었다. 주로 그 위층 내과에서 엄마가 진료를 받고 나오는 길이었다. 엄마는 하루도 빠짐없이 세 남자를 위해 음식을 준비했다. 아내가 나를 위해 매 끼니를 차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 또한 그간 얼마나 고생했을까 이제야 생각이 든다. 까다롭고 예민한 나는 분명 반찬 투정을 했을 것이다. 얼마나 속상하고 꼴 보기 싫었을까. 나와 동생이 조금 크고 나서는 종종 저녁 외식도 하게 되었고, '놀부' 부대찌개는 꽤나 단골 메뉴였다. 동네 상가 식당에서 서비스로 나오는 부대찌개와는 다르게 한 명당 만원이 넘는 가격이었지만, 먹고사는 일이 안정이 되었을 무렵이니 간간히 엄마가 어깨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 더 큰 다행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놀부' 부대찌개는 기본 육수부터 맛의 풍부함이 달랐고, 햄도 소세지도 스팸도 각종 야채도 가득한 데다 라면이나 떡 등 추가할 수 있는 사리의 종류까지 많았다. 역시 돈은 최고다.

 아내의 요리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가던 즈음, 그의 부엌과 식탁을 기록해두기 위해 판 인스타그램 계정의 첫 포스트는 다름 아닌 부대찌개였다. 알록달록하게 얼큰해 보이는 부대찌개의 색깔에, 시원하게 푸른색으로 대비되는 부르스타, 그리고 우리가 처음으로 키트를 사다가 만든 막걸리의 뽀얀 빛의 조합된 것이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저 푸른 콜맨 부르스타에 부대찌개는 물론이고, 베란다에 앉아 삼겹살도 구워 먹고, 닭 한 마리도 끓여먹고, 많은 것들을 해 먹었다. 그런데 순전한 나의 멍청함으로 잃어버려서 아쉬움이 늘 남는다. 뭘 어떻게 하면 브루스타 같은 것을 잃어버릴 수 있나 싶은데, 세상엔 그런 일도 있는 법이다.

 아내가 한국에 잠시 들어간 어느 초가을, 나는 이때다 싶어 클라이밍을 하러 매 주말 온갖 데를 쏘다녔다. 한 번은 집에서 세 시간 정도 거리의 블랙 마운틴 (Black Mountain)에서 1박 2일을 머물렀다. 아내가 없어 대단한 캠핑은 못 하고, 차에다 적당히 매트를 깔고, 침낭 안에서 자기로 했다. 음식도 별 것은 없지만 아내가 한국에 들어가기 전 냉동해둔 수많은 것들 중 삼겹살을 가지고 왔다. 밤이 찾아오자 차가 흔들릴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어왔고, 브루스타에 불을 유지하기는커녕 브루스타와 소중한 삼겹살이 다 날아갈 것 같았다. 그래서 트렁크만 열어 두고 차 뒤편에 앉아 영화 '광해'를 보면서 그 파란 브루스타에 삼겹살과 양파를 구워 먹었다. 어릴 적, 나의 일기는 늘 뻔하게 '참 재미있었다, '로 끝이 났다. 지금 나의 '글'도 생각해보면 그와 별 다를 것이 없다. 그 날의 클라이밍은 '참 재미있었고, ' 삼겹살도 '참 맛있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재미있는 일들은 어릴 때 재밌었던 일들이다. 돌을 쌓고, 풀때기를 만지작거리고, 그네를 타고, 비 맞으며 뛰어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고... 하여튼, 그렇게 차에 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으려니 어찌나 아내가 보고 싶던지.

 삼겹살을 먹고 나니 매섭게 몰아치던 바람의 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트렁크에서 기어 나와 산등성이 끄트머리에 서서 밤 풍경을 바라보았다. 블랙 마운틴의 밤하늘은 조금 독특하다. 도심에서 애매하게 가까우면서도 멀고, 고도가 8000피트(2,400m)로 제법 높아 위로는 별이 제법 보이면서 저 아래로는 도시의 불빛이 화려하게 흩뿌려져 있다. 태평양부터 대서양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최남단 동서 횡단 고속도로, I-10을 달리는 차들의 불빛이 눈부시다.

 블랙 마운틴이 포함된 San Jacinto 산맥에는 이렇게 커다랗고 높은 상록수가 아주 많다. 그 덕분에 밤이건 낮이건 블랙 마운틴의 공기에는 항상 상쾌한 솔 향이 담겨 있다. 이 나무들의 껍질이나 잎의 색깔이 짙어 '블랙' 마운틴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 봐도 멋들어지게 깊고 푸른 초록색과 생명이 느껴지는 쨍한 갈색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녁노을
아침노을

 블랙 마운틴에서의 저녁노을과 아침노을은 참 각별하다. 클라이밍으로 이어진 인연들이 나를 처음으로 블랙 마운틴으로 이끌어주었을 때, 이 곳의 노을은 자기가 살면서 본 노을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클라이밍 동지이자 스승인 코디(Kody)가 얘기해 주었다. 원체 감정이 없는 것 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해서 놀랐는데, 정말로 그랬다. 캘리포니아 여러 곳에서 본 많은 노을들이 아름다웠지만, 블랙의 노을은 정말로 손에, 눈에, 마음에 꼽히도록 아름다웠다. 

 클라이밍 짐이 아닌 자연에서 바위를 하루 종일 오르고 나면 손이 만신창이가 된다. 피부가 다 벗겨지고 긁혀 너무나 따가워서 지퍼 같은 것도 잠그기가 힘들다. 온몸의 근육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그런데 왜 그 다음날 새벽 바위를 잡으면 또 오를 수 있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둘째 날, 차를 세워 두고 클라이밍을 하러 갈 준비를 했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지만, 한낮 뜨거운 햇빛에 달궈질 차 안에 브루스타를 한참 두는 것이 조금 걱정이 되었다. 차 안에서 브루스타를 꺼내어 차 밑, 뒷바퀴 안 쪽으로 세워 두었다. 이렇게 안전을 챙기는 내가 야무지고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다.

 신나게 클라이밍을 하고 돌아와서 브루스타를 챙기려고 보니 그 자리에 없었다. 설마, 해서 한참 차 밑을 훑다가, 차를 옮겨 보아도 없었다. '아......' 집에 돌아와서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는 가스 터지는 것이 걱정되면 가스통만 빼놓으면 되지 왜 브루스타를 통째로 꺼내놓았냐고 했다. 세상에, 정말 맞는 말이다. 나는 아내가 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자기가 현명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무 어설픈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푸른색의 예쁜 콜맨 브루스타를 잃어버렸다. 그 이후론 $5 정도 아끼자고 무난한 까만 브루스타를 사서 잘 쓰고 있다. 그럴 일 없으면 좋겠지만 어쩌다 이 녀석도 잃어버린다면 다시 푸른 녀석을 살 것이다.

 부대찌개는 언제 어떻게 먹어도 정말 맛있다. 그리고 한국 음식이 생소한 이들에게 소개하기 아주 좋은 '한식'이라고 생각한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방송을 보면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의 음식이라고 산 낙지나 육회나 너무 매운 음식 등 고난도의 것을 먹이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많은 음식이 남는 것을 보면서 미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좋아하는 해산물이 굉장히 적은 나에게 누군가 전복찜이나 성게알이나 소라 내장 같은 것이 나오는 오마카세를 난데없이 대접한다면 나는 굉장히 난처할 것이다. 물론 나에게 그런 대접을 한다는 사람은 없고 김칫국이나 마실 뿐이다. 하여튼, 한국 사람인 나에게 김치가 맛있게 느껴지기까지 걸린 시간이 25년이다. 그놈의 '두 유 노 킴치? 비빔밥? 헬씨!' 하면서 먹이진 않았으면 좋겠다. 아, 불고기는 어쩔 수 없이 인정이다. 빈대떡도.

 양념 치킨이 '한식'인가 아닌가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렇게 역사가 길지 않을 수는 있어도 튀긴 닭에 이렇게나 다채로운 양념을 입혀 먹는 것에 있어 한국의 식문화는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한식'이 한국 사람들이 널리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면 나는 양념 치킨이 '한식'이라고 생각한다. 짜장면이나 짬뽕도, 그리고 부대찌개도.

 소세지나 스팸같이 전 세계 누구에게나 제법 친숙하며 직관적이고 자극적인 맛이 나는 가공육, 익숙한 야채. 매콤하긴 하지만 그래도 터무니없지 않게 맵지 않은 얼큰한 국물, 그리고 탄수화물에 탄수화물을 얹는 민족답게 그 국물에 밥을 비비고,  한국의 색을 뽀얗게 담고 있는 쫄깃쫄깃한 떡을 더하고, 거기에 라면 사리를 얹는다. 애초에 주한 미군부대에 공급되었다 남겨진 가공육을 끓여 만들어진 요리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한 한국의 역사까지 담고 있는 요리이니 아주 훌륭한 한식이라고 생각한다. 게임 해설가 울프 슈레더가 '대한미국놈'으로 자신을 칭할 정도가 된 데엔 부대찌개가 한 반쯤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일본이나 중국식 '핫팟'이 아주 큰 인기인데, 나는 부대찌개도 당당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늘 생각한다. '북창동' 순두부찌개가 유명해진 것처럼 말이다.

 이번 아내가 끓인 부대찌개는 유난히도 맛있었다. 내가 집에서건 외식을 하면서건 먹어 본 부대찌개 중 가장 맛있었다. 아내의 요리가 평소보다도 빛날 때면 이는 주로 맛있는 재료들을 더 많이 때려 넣은 덕이다. 일단 육수 베이스부터 진한 사골 육수와 닭 육수, 그리고 야채 육수가 블렌딩 되었다. 스팸은 물론이고, 돼지고기 소시지, 소고기 소세지, 스모크향 가득한 베이크드 빈은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맛을 내었다. 거기에 호박, 양파, 배추, 김치, 무, 콩나물, 표고버섯, 감자, 야채들이 내는 은은하고 편안하며 시원한 맛은 가공육 맛과 기막힌 밸런스를 이루어낸다. 무, 콩나물, 배추에서 우러나는 달달한 시원함은 언제나 훌륭하다. 떡은 쫄깃하고, 역시 한국인이라면 라면 사리가 필요하고, 부대찌개에 한껏 맛을 풀어내고 남은 김치는 여전히 짜릿한 맛을 한가득 품고 있었다. '아, 이럴 때를 위해서 슬라이스 치즈가 필요한데...' 우리는 그 와중에도 다음에 더 맛있게 먹을 고민을 했다. 완연하게 찾아온 여름날의 저녁, 얼큰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더위를 즐겼다.

 한인 마트에서 할인을 하길래 처음으로 사 본 '한라산' 21도짜리 소주가 홀짝홀짝 넘어갔다. 나는 미묘한 단 맛 때문에 소주를 정말 안 좋아한다. 그런데 21도쯤 되니 단 맛이 적고, 쨍하고 깔끔한 맛이 좋다. '이렇게 소주에까지 맛을 들이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 한 잔을 더 따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삼겹살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