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외로움

내가 만들어낸 것인가, 무엇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가.

by 비니비니캐럿캐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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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 순간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운 날 길을 걷다가 지나가는 차 안에 온 가족이 모여있는 것을 볼 때,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잔씩 하며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에도, 마트에서 아이를 안고 같이 장을 보는 것을 볼 때에도.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하나의 사진처럼 내 마음에 콕 박혀서 외로움이라는 작고 커다란 것이 스멀스멀 옆에 자리 잡곤 한다.

외로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과연 내가 만들어낸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진 것일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내가 혼자 있을 때라는 것이다. 사실 딱히 힘들거나 우울하거나 배가 고픈 것이 아니다. 근원지를 찾고 싶은데 아직 얄팍한 인생과 지식의 생명체인 나로서는 찾기 어려운 부분이다.


"나 외로워"

나의 외로움에 조금 더 파보자면, 있다가 없을 때 더 커지는 감정중 하나이다. 입 밖으로 내뱉을 땐 조금 오그라드는 말이기도 하고.

뭐랄까, 혼자서는 절대 채울 수 없는 무언가 나를 고립시키고 있달까. 이렇게 써보니 내가 겪어본 외로움이 하나 생각난다. 캐나다에서 어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학원에서 정말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사귀면서 마치 멀리 떨어져 있던 베프를 만난 거 마냥 잘 지냈었다. 3개월 차 즈음엔 그 친구들이 하나둘씩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깝게 지낸 터라 이 친구들이 돌아갈 거라는 걸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그렇게 맞이한 이별은 더 크게 다가왔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서로 바쁘면 연락이 뜸하듯이 이 친구들도 본업으로 돌아가고 시차도 다르니 자연스럽게 연락은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언제든지 연락을 하면 반가워하며 답장을 해주는 사이지만 얼굴을 맞대고 안 되는 영어를 써가며 어떻게든 대화를 이끌어가려는 즐거움과는 분명히 다르다.

친구들을 다 보내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나 혼자네"

외국인 친구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만남과 이별은 붙어 있기 마련이다.

"저런 인연 하나하나에 연연하면서 살 거야?", "이 험한 세상 누구한테 기대서 살 생각을 한다고?"라고 내면의 다른 '나'가 외치곤 한다.

"그래 맞아. 너무 많은 정은 나에게 해로워." 라며 의식적으로 어느 정도 선을 그은 채 새로운 인연을 만나곤 했다. 순전히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외롭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로봇이 아니다. 모든 인연을 기계적으로 선을 그으며 만드는 능력 따윈 없다. 심지어 나는 선을 그었다 하더라도 또다시 맞이하는 이별 앞에선 무너지기 마련이다. 저런 노력도 결국엔 "아, 여전히 외로워"라고 말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본다. 나는 예상치 못한 외로움에 당황했었고 더 이상 그 외로움이 생기지 않게 노력도 했었다.

결론은? 하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는 아니고. 대체 어떻게 즐기라는 건지(?)

여전히 그대로이다. 아직도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매일매일 허덕이며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과하지 않은 혼술을 하며 살짝 달래는 정도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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