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예쁜 쓰레기와 만나다.

넌 예쁘지만 쓰레기같아. 쓰레기 같지만 넌 예뻐.

by 비니비니캐럿캐럿

아니, (한국인의 감탄사, 부사, 형용사) 이게 무슨 일이람.

캐나다의 겨울. 그것이 찾아왔다.


12월 후반을 달리고 있는 와중에 충격적인 '마이너스'가 붙은 두 자리 숫자를 보았다.

점심을 시작하는 건지 저녁을 시작하는 건지 모를 애매한 하늘에서 엘사가 마법을 부리기 시작한 걸까.

조금 일찍 일어났을까 하고 여유롭게 일어났다. 하지만 11시 반이라는 시간을 확인한 후 찝찝함으로 바뀌었다. 어쩐지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더라(?)

눈이 눈을 때려서 눈을 뜨지 못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희한한 체험.

'눈'이라는 것은 세상에 잠시나마 동화를 내려주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실적인 생각으로 전환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옆 집의 한 백인 노인이 자기 몸 보다 큰 삽으로 눈길을 치우는 것을 본 순간부터.




집 앞에 있는 유치원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Let it go를 부르며 엘사를 찬양하고 올라프를 만들기 급급했지만 나는 어서 빨리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

문득,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초등학교 아니 중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겨울방학을 맞이하면 항상 '눈'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부모님은 올 겨울엔 눈이 적게 왔으면.. 하셨지만 그때마다 나는 '항상 거무튀튀한 아스팔트만 보다가 일 년에 한두 번쯤은 하얀색으로 뒤덮이는 거리를 보는 건 너무 좋잖아!'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첫눈이 내리는 날, 아무도 밟지 않는 눈 덮인 땅을 밟기 위해 누구보다 일찍 나가 고요한 아파트 정문 앞에서 듣는 '뽀드득'의 희열감이란.

천천히 한 발짝 두 발짝 나아가면서 재밌는 소리로 즐겁게 해주는 '뽀드득'을 들으며 밟았던 발자국 그대로 다시 밟으며 뒤로 돌아가는 일은 나의 겨울이 시작됨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눈 덮인 차에다가 낙서하기. 락앤락 통을 들고 친구들과 이글루 만들기(하루 만에 완성할 수가 없어서 다음 날 찾아왔지만 이미 무너지고 없어졌었다), 눈사람 만들기(이것 또한 누군가 발로 찬 흔적이 있었다), 눈싸움 하기(한 친구가 눈 뭉텅이 안에 돌을 넣고 던진 일이 있었다) 그 밖에 눈으로 할 수 있는 즐거운 모든 것(스노보드 타다 엉덩방아 정도.)

그래, 그러했다. 나도 저렇게 '눈'을 사랑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이 왜 겨울에 눈을 그렇게 피하고 싶으셨는지 이해가 된다. '눈'이 주는 즐거움과 낭만보다 '눈'으로 보고 느낀 것들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아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이제는 엘사가 부리는 마법이 하나의 골칫덩이가 되었을까?

아침 출근길의 극심한 체증, 눈 덮인 아스팔트는 10평 남짓되는 공간에서 아슬아슬하게 스케이트를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한번 미끌! 하고 넘어지면 쉽게 돌아오지 않는 회복력, 즐거움과 낭만은 가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곤 한다. 다시 돌아온 거무튀튀한 아스팔트, 엘사의 마법 재롱이 끝난 후의 세상에 남는 건 염화칼슘과 까맣게 녹아 우리의 신발을 더럽히는 잔해들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스키장에서 스노보드를 타며 엉덩방아 찧을 시간과 그 엉덩방아 찧은 친구 녀석을 보며 웃을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 아닐까.

혹은, ' 30대 남성, 스키장에서 보드를 타던 중 엉덩방아 찧으며 척추골절.' - 20XX, 브런치 일보. 이제는 한번 넘어지면 쉽게 회복할 수 없는 체력이기도.

눈이 오는 날 친구들과 만나면 그땐 그랬지는 지나간 과거가 됐고 길거리를 걸을 때면 미끄러질까 조마조마하며 이 예쁜 쓰레기는 언제쯤 그치려나 하는 걱정만이 남았다.

미안해. 넌 예쁘지만 가끔은 쓰레기 같아. 하지만 쓰레기 같아도 넌 예뻐.

I'm sorry. You are beautiful, however look like a garbage sometimes.

You are beautiful even if you are a garbage.


내가 미안할 수 있게 제발 멈춰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