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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진오 Nov 21. 2016

그대가 걷는 길 #14 떠나야만 하는 아쉬움

서른 살, 퇴사 후 떠나는 유럽여행_Ericeira



Ericeira


서핑을 하기 위해 찾은 포트투갈 서쪽, 대서양과 맞닿아 있는 도시의 이름이다.

아마 대부분 포르투갈을 여행 할 때는 리스본과 포트루를 기점으로 해서 근교로는 호카곳, 신트라 를 많이 방문하는 편인 것 같다. 나도 처음 포르투갈을 넘어 갈 때까지만 해도 리스본과 포르투만 염두에 두었지 설마 내가 포트루갈에서 서핑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서핑은 함께 묵었던 동생이 추진해서 성사되었는데 마침 Ericeira 지역에서 서핑을 하고 있는 한국 사람과 연락이 되어 조금 수월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지역에는 정말 많은 서핑캠프가 있는데 우리가 간 곳은 Laneez Ericeira Surf house 라는 곳이다.

이 곳이 좋은 점은 보통 서핑캠프가 일반적인 투어 처럼 딱 짜여져 있는 스케줄에 맞춰서 진행되는 경우와는 다르게 Surf house 에서 일반 호스텔 처럼 숙박을 하다가 본인이 원하는 날짜에 레슨을 신청해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Surf house 에 도착해서 안 사실이지만 숙소에서 바라보는 View 와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솔직히 서핑을 하지 않아도 휴식을 취하기 너무 적합한 곳이었다.  

애당초 2박만 하려고 했던 일정을 5일로 연장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숙소에서 바라보는 대서양>



숙소에 도착한 당일, 다행히 오후에 레슨이 예정되어 있어 우리는 바로 서핑레슨을 신청했다.

사실 서핑을 하기 전에 어김없이 수영을 못해도 괜찮냐는 질문을 했었다. 당연히 초보자 단계에서는 수영실력이 전혀 상관없고 발이 땅에 닿는 곳에서만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무래도 지난 번 스쿠버다이빙 실패에 대한 안 좋은 기억도 남아 있는 상태라 장비를 챙기고 해변가로 가는 내내 마음속에 긴장을 풀진 않은 상태였다.



< SURF LESSON>



우리가 서핑을 할 곳은 숙소에서 차로 약 10분 정도 떨어진 해변이었다. 해변가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파도가 너무 세서 정말 저기가 초보자들이 서핑을 하는 곳이 맞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함께 서핑을 간 외국인 친구들도 많았는데 그 중에 발리에서 서핑을 배웠던 한 친구는 이곳에 비하면 발리의 파도는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이야기 해주어 도대체 이 양반(?) 들이 무슨 생각으로 생초보들을 사지로 데리고 왔는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수 없는 것, 물에 들어가기 전 오늘 처음 서핑을 하는 우리는 강사에게 간단히 서핑에 대한 설명과 교육을 들었다.

물론 설명을 영어로 하기 때문에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강사는 서핑을 하는 방법론에 보다 요즘 서핑산업이 발전하면서 많은 곳이 단순히 돈벌이를 위하여 기계적으로 서핑을 가르친다는 것에 안타까워 하며 서핑은 그런 것보다 마음으로 파도를 느끼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감성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던 것 같다. 서핑을 한지 20년이 넘었다고 했는데 정말 서핑이라는 스포츠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잘 느껴졌던 것 같다.


< 오늘 우리가 타게 될 서핑보드>
< 조금 숙력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 서핑보드들..>


<오늘의 서핑 장소>
<새로온 친구들 교육중>


거친 파도를 눈으로 보며 바다에 발을 담구기까지 많은 두려움과 긴장감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눈 앞의 파도가 주는 왠지 모를 가슴 떨림과 설렘이 함께 느껴졌다. 다른 곳도 아닌 이 곳은 대서양 아니던가..

이런 곳에서 서핑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린아이가 처음 물장구를 배우는 것과 같이 약간은 들뜨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대서양 바다에 처음으로 발을 담구었다.


물은 생각보다 차가웠지만 깊이는 그다지 깊지 않았다. 다행히 물 속에서 발이 땅에 닿았기에 안도감을 느끼며 강사가 이끄는 곳으로 위치를 옮겼다. 초보자들은 강사들이 파도를 잡아 주기 때문에 서핑보드에서 잘 일어나는 법만 배우면 된다. 물에 들어가기 전 강사는 일어나는 방법에 대해 총 3단계의 구분동작으로 설명을 해 주었는데 확실히 배운대로 천천히 따라 하니 거친 파도에서도 일어나기가 수월했다.


처음으로 파도를 따라 서핑보드에서 일어났을 때의 쾌감이 이루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 어떤 놀이기구 보다 짜릿했다.





이 곳이 좋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굳이 어디를 구경하러 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항상 여행을 하며 하던 고민인 '오늘은 뭐하지? ' 라는 고민을 여기서는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이 주변에는 관광지도 없고 관광객도 없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하루를 시작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멍 때리고 앉아 있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 창밖으로 바라보는 대서양, 멍때리기 최적의 장소>


여기 묵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은 마치 자석에 끌린 듯 바다가 보이는 창가 앞에 앉아 때로는 노래를 틀아 놓고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새 하늘은 저무는 태양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 일몰 사진 >


그렇게 해가 지면 저녁을 먹고 벽난로에 불을 지펴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이 모이면 불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무도 없을 땐 그저 혼자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벽난로에 불을 지펴보아요>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북적북적한 시간을 보내다가 4일차 되었을 때 거짓말 같이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이 큰 숙소에 하루 종일 나 혼자 남은 시간이 있었다. 마치 며칠 전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술을 마시며 함께 왁자지껄 떠들 던 시간이 한 여름밤의 꿈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웃음으로 가득 찼던 공간은 조용한 침묵만이 흘렀다. 들리는 것은 내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뿐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고독한 시간에 많이 외로웠지만 그 동안의 여행으로 이런 시간들이 익숙해져서 일까 그 다지 나쁘진 않았다. 아마 이 여행을 통해 스스로 조금은 성장한 것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어느 덧 두 달간의 여행도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언제나 도시를 떠날 때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이 곳 Ericeira 만큼 떠남에 있어 진한 아쉬움이 남았던 곳은 없었던 듯 하다.


서핑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떠나 이 작은 도시가 풍기던 분위기와 정취를 쉽게 잊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약 다시 한번 여행을 오게 된다면 몇달이고 이 곳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언젠가 그런 날이 다시 오기를 바라며


Thanks Erice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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