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겠어!" 라며 호기롭게 퇴사를 결심했다. 주변에서 보기에는 무모해 보였을지 몰라도 스스로도 1년이라는 유예기간을 정해놨었고 1년 동안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그대로라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4년이라는 직장생활의 경력은 나에게는 최소한의 보험이었다.
2016년 8월 26일 퇴사를 하고 나서 약 5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5개월의 시간 동안 아직까지 나의 삶에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지는 못하다. 나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5개월 동안 베짱이처럼 놀고 있는 한량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 퇴사 후에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시시때때로 어떤 감정들에 휘둘리고 있는지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사실 퇴사를 고민하던 시절 도대체 퇴사를 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참 궁금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퇴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잘됐으면 좋겠다. 성공했으면 좋겠다"라며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비록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성공을 통해서 나의 결정을 조금 더 합리화하고 간접적으로나마 용기를 얻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사실 퇴사 후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이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혹시 퇴사자의 삶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퇴사 후 나의 상황과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조심스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대단히 주관적인 나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내 주변에는 퇴사 후에 창업을 하거나 어학연수를 가거나 이직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본인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 퇴사를 하게 되면 다 저렇게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주시길.
퇴사 후 한 달 동안은 스스로에게 주는 휴식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곧 여행을 앞두고 있긴 했지만 4년 동안 나름대로 가열하게 달려왔던 나에게 주는 보상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음도 정말 많이 평온했다. 드디어 퇴사를 했다는 후련함도 있었고 오랜 시간 얽매여 살아왔던 조직이라는 틀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느꼈다. 또한 당장 여행이라는 목표가 있어서 불안함이나 초조함도 없었다. 여행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여행을 통해서 나의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사 후 한 달 동안은 과거의 선택에 대한 후회도 없고 평온한 현재를 즐기며 미래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던 심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황금기였다고 생각한다.
퇴사를 했다고 하니 주변에서 한번 만나자는 연락이 종종 왔다. 그래서 약속이 있는 날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때마다 그들은 퇴사 후 내가 뭘 할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참 많았다. 사실 퇴사 후에 만나자고 연락 오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나와 같은 고민을 품고 있다. 대화를 해보니 그들이 나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는 어쩌면 본인 주변에 퇴사 후에 잘 된 케이스가 있길 바라는 소망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퇴사라고 하면 실패라는 두려움이 항상 수반되는 것이니 그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주변에 잘되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고 용기와 희망을 간접적으로라도 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잘되길 응원하는 그들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들에게 사회적으로 성공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의 조그마한 바람은 누군가가 훗날 그때 퇴사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혹은 지금 행복하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그렇다.'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돈은 잘 못 벌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어서 행복해.', '그때 퇴사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진 못했을 거야.'
이런 식의 이야기들을 그들에게 들려줄 수 있길 바란다. 물론 위로가 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각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단지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위로나 위안은 사회적인 성공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두 달 동안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정확히 이야기를 하면 총 58일 동안 7개국 20개 도시를 여행하고 왔다. 특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퇴사를 하고 유럽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정말 정말 많으니까.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퇴사하고 온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만났다.
다만 그동안 나는 해외라고는 회사에서 가는 베트남 출장과 올봄에 처음으로 친구들과 친목계를 하며 모은 돈으로 떠난 3박 5일 라오스가 전부였기에 해외여행에 대한 갈증은 항상 존재했다. 특히나 유럽은 빡빡한 삶을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로망을 안겨주는 곳이기에 대학생 때는 시간은 있으나 돈이 없었고 직장인일 때는 돈은 있으나 시간은 없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드디어 돈과 시간이 모두 있는 여행을 하기에 완벽한 순간을 맞이 한 것이다.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을 통해서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찾아오고 싶었다. 구체적이지는 못해도 최소한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싶다.' 정도는 답을 내리고 오고 싶었다. 유럽이라는 낯선 환경과 분위기, 혼자 사색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될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 이런 것들을 통해서 조금 더 성숙한 생각과 그리고 지금 나의 고민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행을 통해서는 내가 원했던 대답을 가져오지 못했다. 의식적으로 계속 사색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어떤 날을 '그래 해보자!, 난 할 수 있어!' 라며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생각으로 한껏 들뜨다가도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원하는 걸 끝내 못 찾으면 어쩌지?'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요동쳤다. 그래서 여행을 하면서도 많은 감정 기복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여행을 하면서 글을 씀으로써 이러한 감정의 기복을 나름대로 배출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는 점이다. 여행을 통해서 무엇이 남았느냐고 묻는다면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이나 목표는 정하지 못했지만 나의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나만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면 굉장히 창피하고 부끄러운 내용들도 많지만 그 당시 나의 진솔한 생각이었기에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때의 기록들을 엮어서 전자책 출간이라는 나름대로의 결과물도 만들어 내었으니 답을 찾아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두 달간, 그러니까 지금까지가 나의 가장 큰 슬럼프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나의 일상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고 글을 꾸준히 쓰고 있었으며 가끔 강연이나 모임에도 참석을 했다. 정확하게 퇴사 D+1달 과 동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으나 그 일상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은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 그때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당장 눈앞에 여행이라는 계획이 있었고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을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두 달간의 꿈만 같던 여행이 끝나버렸고 나는 이제 정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아야 했다. 그 전에도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초조해하지 않으려 마음을 다스렸지만 점점 하루하루 나태해져 가는 나의 모습에 대한 실망감과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체감하며 스멀스멀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를 자책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책을 읽고 글을 써봤자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정말 이런 것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라며 퇴사 전에 했던 결심들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다가 '실업자 100만 시대, 청년실업률 역대 최고'라는 식의 기사가 눈에 들어올 때면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너무 무모했나 싶기도 했고 '뭐라도 할 수 있겠지. 나에게는 최소한의 경력이 있고 이 경력을 살리면 최소한 다시 일은 시작할 수 있을 거야'라는 자신감도 어느 순간 모래성처럼 무너져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전자책을 출간하였지만 대형서점에 가면 수만 권의 종이책들이 즐비하고 이 세상에 내가 쓴 책 따위가 있을 곳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기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나 강하게 요동을 치고 있었다.
한번 생기기 시작한 부정적인 생각들은 마치 암세포처럼 내 안의 자존감, 자신감, 용기, 희망 같은 긍정적인 요소들을 갉아먹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슬럼프의 기간은 길어져만 갔고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기에 나는 부산으로 훌쩍 떠나왔다. 이번에는 거의 100% 도피성 여행이었다. 나를 믿어주시는 부모님으로부터, '요새 뭐하고 지내?' 라며 안부를 묻는 지인들로부터, 나태하고 게을러진 나 자신으로부터 나는 도망쳐 나왔다. 이곳 부산으로.
다행히 부산에 와서 어느 정도 슬럼프는 극복했고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 의외로 슬럼프의 극복은 생각지 못한 영화 한 편에서 일어났다.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이라는 영화는 마약에 중독되어 길거리를 전전하는 주인공이 우연히 찾아온 고양이를 만나 인생이 바뀌는 내용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제작된 영화인데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결국은 인간이란 혼자서는 너무나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너무나 약하고 작은 존재이기 때문에 혼자서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 주위에는 우리를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들이 있다. 이 주인공에게는 마약 중독 치료를 도와주며 집을 제공해주는 사람이 그랬고, 우연히 찾아온 고양이의 존재가 그랬고, 옆집에 사는 사랑하는 여자가 그랬고,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준 사람들이 그랬다.
주인공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와 같이 길거리에서 공연하고 하루를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그 인생이 바뀔 수 있었던 것은 변화하고 싶은 그의 의지와 주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인간이 '혼자' 일 때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나의 인생' 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려 끙끙 거리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남들과 비교하고 주변의 눈치를 보며 그렇게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강의를 듣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아직도 나는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해서 특정한 '직업'으로 대답을 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이런 것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책이든, 글이든, 강연이든, 상담이든, 대화든 어떠한 방식이라도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 나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싶다. 너무 추상적이고 뻔한 이야기 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 추상적이고 뻔한 대답을 내리기까지 5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니 어쩌면 5개월이 아니라 30년이 걸린 것일 수도 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아마도 나의 이야기는 퇴사를 고민 하는 사람중에 현실적인 부분을 많이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안될지도 모른다. 연봉, 복지, 커리어, 창업, 이직 과 같은 현실적인 부분을 보자면 나는 너무나도 무계획이고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다.
나도 그런 부분은 인정한다. 그렇기에 시시가각 찾아오는 감정의 기복에 크게 흔들렸던 것이리라. 하지만 퇴사 당시에도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인생에 대한 의문이었고 나는 당장의 경력 (혹자는 먹고사니즘 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같은 현실적인 활동 보다 그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본인의 어떠한 선택을 하던 모든 선택에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다만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내가 줄일 수 있는 최대한의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는 하루라도 빨리 안정적인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월급이 주는 달콤함과 기업이라는 조직이 부여하는 소속감과 안정감이 나에게는 가장 큰 위험요소였다.
나의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인생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 '이 사람은 퇴사 하고 이런 일을 겪었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여 줘도 감사할 듯 하다. 나는 지금도 명확하고 구체적인 답을 찾진 못했지만 나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이 슬럼프는 몇번이고 나를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그 슬럼프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겨낼 것이고 내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끝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먼 미래의 성공에 시선을 두고 현재를 괴로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는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