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시작

#5

by bin진오

“XX 야, 잠깐 내 자리로 와 볼래?”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과장님이 아침부터 나를 자리로 불렀다. 입사를 한 지 1년이 조금 넘어가며 이제 막 나에게 주어진 업무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 곳에서는 내가 막내였기에 나는 노트와 펜을 챙겨서 과장님 자리로 찾아갔다.


참고로 우리 팀의 업무 스타일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B2B (Business to Business)의 업무이다 보니 프로젝트 위주로 일이 진행될 때가 많았고 늘어나는 프로젝트 대비하여 사람은 언제나 부족해서 한 사람이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여기에는 일장일단이 있는데 가장 큰 장점은 상사가 야근을 한다고 해서 내가 야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각자가 맡은 프로젝트가 다르다 보니 서로의 업무에 크게 관여를 하지는 않았다. 단점은 그렇기에 담당자로서 모든 업무의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신입사원에게 굉장히 큰 심적 부담이었다.


물론 신입사원에게는 처음부터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기지 않고 조직책임자가 적절히 업무를 배분해 주지만 가끔은 배분이 잘못되어 한 사람에게 과중한 업무가 부담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 그 과장님이 나를 호출 한 이유는 나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넘겨주기 위해 서였다. 나는 갑작스러운 업무 배정에 조금 당황했지만 아직 1년 차인 나에게 어려운 프로젝트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조직에 대한 믿음과 열심히 업무를 배워서 인정을 받고자 하는 신입사원의 열정이 가득했기에 흔쾌히 그 일을 인수인계받았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회사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순간이었는지.

막상 프로젝트를 받고 일을 진행 해 보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신입사원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많이 버겁고 난이도가 높은 프로젝트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젝트에 대한 부담과 어려움은 커져만 갔다.


당장은 모르는 것이 생길 때마다 즉각적으로 물어보며 지시를 받고 업무를 진행하였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과연 내가 이 것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때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닌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당시에는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 나는 이 정도밖에 못하는 놈이라 저평가될 것 같았고 나로 인해서 이 프로젝트가 누군가에게 배정된다면 그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될 것 같은 미안함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를 참아가며 악착같이 회사 생활을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가끔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심적인 스트레스는 커져만 갔고 내 주변에서도 이 프로젝트는 신입사원이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만 나올 뿐 본인이 하겠다며 나서는 이는 당연하게도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주어진 일이 많은데 이 어려운 프로젝트를 누가 선뜻 맡으려 하겠는가? 그냥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하고자 하는 의미 없는 메아리였을 뿐이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그때 나를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이야기해주시는 상사 분들이 꽤 있었다.


그렇게 악착 같이 버텨내며 얻은 것도 많았다.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거르는 날도 많았고 팀 내에서 가장 야근을 많이 하는 직원이 되었다. 당시에는 실력이 없으니 시간이라도 많이 투자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럴수록 팀 내에서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팀 내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신입으로 평가가 된 것이다. 그 이후에 팀 최우수 사원으로 뽑히기도 하며 팀 내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또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업무적인 능력도 많이 향상되었다. 동기들 대비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업무를 경험했고 단시간에 역량이 빠르게 향상이 되었다.


하지만 버텨내는 과정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너무 많이 혹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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