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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생명력이 없는 공간은 바로 회사 출근 버스다. 이른 새벽 모두 다 지친 몸을 억지로 이끌고 강남역 인근 교보타워 앞에 줄을 서 있다. 곧 회사 셔틀버스가 도착하고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회사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전쟁터에 끌려가는 군인들도 이보다 무기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버스를 탄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그 어떠한 감정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들의 표정에는 생명력도, 살아있음도 느낄 수 없는 흡사 시체와 같았고 물론 나도 그 중에 한 명이었다.
버스 안에서 동기를 만나도 반갑게 인사하거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그저 살짝 들어 올리는 손 인사로 나의 반가움을 대신할 뿐이다. 이 버스 안에서 누군가와의 대화는 쓸데 없는 행동에 불과했다. 이곳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조금이라도 빨리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아 부족한 잠을 보충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 내가 타는 버스에 유일한 생명이 하나있었다.
“ 기사님, 여기 ‘독서등’좀 켜주세요.”
여기서 ‘독서등’이란, 좌석 위 쪽에 스위치를 눌렀을 때 나오는 주황색 조명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잠에 취해 어둡고 적막한 버스 안에서 그 분은 출근버스에서 희미한 등불을 밝히고 독서를 했다. 생명력을 찾아 볼 수 없는, 무기력함이 가득한 이 곳에서 느껴지는 유일한 활력이었다.
나도 가끔은 그 분에게 자극을 받아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펼치곤 했지만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곤 했다. 어느샌가 버스를 타면 나도 모르게 오늘은 독서등이 켜져 있는지 확인을 해 본다. 스위치를 눌렀을 때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김 없이 독서등을 찾는 그 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내 옆자리에 앉은 그 분은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었다. 누가 봐도 부장님 포스를 풀풀 풍기시며 손에는 다소 어려워 보이는 두꺼운 책이 들려 있었다. 그렇게 그 분은 삶이 느껴지지 않는 숨막히는 이 곳에서 유일하게 '살아 가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