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회사를 입사하면서 해외 출장에 대한 로망이 없던 사람이 있을까? 나도 마찬가지로 입사를 하면서 해외 출장을 가서 근사한 양복을 차려 입고 영어로 멋들어지게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리고 드디어 마침내 나도 해외출장을 갈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물론 나의 해외출장은 근사한 양복을 차려입을 필요도 없고 영어로 멋들어지게 발표를 할 일도 없다. 내가 할 일은 개발한 제품이 해외 생산공장에서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업무였다. 그래도 2년 차 신입사원이 해외출장을 가는 일은 흔히 있는 기회는 아니었다. 내가 담당자이기에 가는 것이긴 하지만 아직 제대로 여물지도 않은 신입을 해외에 혼자 보내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기도 하고 그만큼 내가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편으로 혼자 가는 것이 걱정이 되면서도 설레기도 했다.
내가 출장을 갈 곳은 베트남이었다. 항상 상상해왔던 유럽이나 미국이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번 출장으로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을 벗어나 외국이라는 곳을 가보게 되었다. 서른 가까이 살아오면서 한 번도 외국을 나가보지 못한 게 창피하기도 하고 그 처음이 여행이 아닌 출장으로 가는 것이라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의 손에 쥐어진 여권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들떠 있었다.
베트남에서 가장 힘든 것은 특유의 고온 다습한 기후를 버텨내는 것이다. 내가 처음 간 4월에도 이미 그곳 날씨는 30도를 간단히 넘겼고 습기 때문에 마치 사우나에 온 듯한 끈적함이 느껴졌다. 밖에 나가 걷기만 해도 채 1분이 지나지 않아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또한 거리에는 온갖 스쿠터들이 길거리를 헤집고 있었다. 도로위에 광경을 택시 안에서 지켜보며 기회가 와도 절대로 베트남에서는 운전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공장에 도착해 현지 직원들을 만났다. 나와 주로 일을 하게 될 친구를 소개받았는데 그는 본인을 ‘Terry’라고 소개했고 그들은 나를 ‘Mr.Park’이라고 불렀다. Terry는 나보다 3살 적은 동생이었고 마찬가지로 입사 한지 얼마 안 된 신입이었다. 영국의 축구선수 ‘JohnTerry’를 좋아해서 영어 이름을 ‘Terry’라고 지었다고 하는 귀여운 친구였다.
우리는 영어로 소통했지만 서로가 부족한 영어 실력과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으로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내 그런 것들은 많이 익숙해지고 적응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Terry라는 친구는 다른 직원들에 비해 본인이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라 함께 일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이후로 베트남 출장을 한 달에 한번 꼴로 정기적으로 가게 되었다. 베트남 출장 횟수가 늘어가는 만큼 현지 직원과의 친분도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아마 4~5번째 베트남 방문일 때였을까 그 친구가 우리를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Terry는 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집안에서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을 하노이에 보내 공부를 시키고 있었고 한참이나 어린 꼬마 여동생도 그가 보살펴야 했다.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감이 적지 않을 텐데 그 친구는 너무도 당연하게 스스로에게 주어진 가장으로의 역할을 받아들이고 잘 이겨내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Terry를 제외한 또 다른 현지 직원들이 Terry 집을 찾아왔다. 그중에서는 한국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온 Tan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너무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해서 우리가 한번 비정상 회담에 나가보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함께 Terry 어머니가 차려준 현지 음식을 먹고 마당에서 배드민턴도 치며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는 각자의 오토바이에 우리를 태우고는 근처 호숫가로 향했다. 그 곳은 그다지 크지 않은 호수였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나무 낚시대를 이용하여 낚시를 한다고 우리에게 말해주며 직접 시범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우리 중 그 누구도 물고기를 낚지 못했다. 그 친구들은 우리에게 오늘은 운이 안좋은 날이라고 했지만 나는 평상시에도 그들이 번번히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모른척 넘어가 주며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기로 했다.
하루 동안 마치 여행이 아닌 정말 외국 친구네 집에 온 듯이 그들은 우리를 편안하게 대해 주었고 또한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우리에게 소개해주려고 했다. 항상 업무적으로만 봐왔던 그들의 모습이 아닌, 한 명의 개인으로서 그들의 평범한 삶, 친구, 가족, 일상 등을 함께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경험은 나에게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 모든 것들은 개인적으로 여행을 왔다면 결코 겪어보지 못했을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그 안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베푸는 친절과 따듯함을 더욱더 진실되게 느낄 수 있어서, 그 어떤 베트남 출장보다 소중하고 귀한 시간으로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