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2016년 드디어 나는 영원할 것만 같았던 20대를 끝내고 서른이 되었다. 간혹 서른이라는 나이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만으로 29살이에요”라며 기어이 20대의 끄자락에 발을 얹으려 한다. 굳이 그 정도로 서른이 된 자신을 부정할 필요가 있나 싶다.
아주 오래전 서른이 되었을 때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20대의 대학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인지 나는 마치 중고등학생들이 어른이 되기를 바라듯이 하루 빨리 30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쯤이면 사회에 진출해 돈을 벌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길 것이고 길고 길었던 배움의 과정에서 벗어나 나만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때 나는 서른의 내가 ‘섹시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한껏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 나는 서른 살에 섹시한 남자가 되어있을 거야.”
“…………………. 네가? ”
물론 외적으로 섹시해지는 것은 이번 생에는 글렀으니 내면이라도 섹시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도 나오듯 ‘근육보다는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가 되고 싶었고 요즘 말하는 ‘뇌섹남’이 되고 싶었다. 다양한 주제에도 막힘없이 나의 생각을 이야기할 줄 알며 주변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남자. 내가 바라고 원했던 서른 살의 나의 모습은 그랬고, 그때는 그렇게 늙어가는 것이 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서른이 된 나를 살펴보니 꽤나 많이 절망스럽다. 아무리 이번 생에 외면의 섹시함을 포기했다고는 하지만 너무 빠르게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었다. 몸무게가 5kg이나 늘었고 그것이 온전히 배로만 갔는지 허리둘레가 4인치나 늘어 있었다. 퇴근길에 사가는 야식과 잦은 음주가 주된 원흉이었다. 사람들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 너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 너 왜 이렇게 쩔어 있어?”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한 번은 중요한 날에 아침부터 옷차림에 신경 쓰고 얼굴에 BB크림까지 바르며 나름대로 힘껏 멋을 부리고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사람들은 나를 보고 피곤해 보인다며 ‘요즘 힘드냐?’ 안부를 묻곤 했으니 내 꼴이 참 심각하긴 했나 보다.
내면은 외적인 모습보다 더 절망스러웠다. 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것은 고사하고 정치, 사회, 경제등 흔히 상식 혹은 교양이라 부르는 이슈들에 무관심했고 아는 게 없었다. 회사를 다니며 주어진 업무에 능숙한 사람은 되어가고 있었지만 업무가 아닌 그 외적으로는 그 어떤 것에도 예전에 비해 성숙되거나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여러 가지 면에서 서툴렀고 부족했다.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고 무능했다.
그럴 때면 지난 시간 동안 나는 도대체 뭘 했나? 하는 자괴감과 허무함이 들곤 했다. 마치 4년이란 시간이 통째로 버려진 듯했다. 경각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원했던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나. 당장 눈 앞의 업무에만 정신이 팔려 내가 어떻게 세월을 보내고 있는지 잊어가고 있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돈 버는 기계’,‘회사의 부속품’으로, 사람으로서 성장이 아닌 기계화가 되어 가고 있는 듯했다. ‘다들 그렇게 산다’라는 말은 더 이상 변명이 되지 못했다. ‘나는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다’며 내 마음속에서 강하게 지금의 내 모습을 비난하고 꾸짖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너의 서른은 너무 별 볼일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