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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노 Jan 13. 2019

모자 같은 모자(母子) 관계

  어머니는 내게 항상 커다란 모자 같은 존재였다. 마치 내 방 행거에 걸려있는 모자들처럼 언제나 같은 자리에 계심은 물론, 때로는 나의 안 좋은 모습들을 가리고 담아내기 바쁘셨다. 어머니와 아들 간 관계에 있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상상할 수도 없는 불효를 저지르는 대상자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나는 저 정도는 아닌데, 나 정도면 완전 효자구나'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다.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청승맞게도 부모님과의 남은 시간이 걱정됐고, 괜스레 울컥해져 내일부터라도 잘해드려야지 했던 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 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다음 생에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는데, 진심 어린 그 말이 참 아름답게 보이는 것과 동시에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그럴 자신은 없다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사랑보다 우리 어머니 것이 유독 큰 것이 아님에도 난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하시던 상황에 도저히 그 말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적이 많았다. 때로는 나도 여러 일들을 겪으며 힘들어 죽겠는데, 어머니의 돈, 인간관계에 대한 푸념에 건성으로 대했던 적도 있다. 그런 내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어 지금까지 받은 사랑만큼 아니 비슷하게라도 되돌려 줄 수 있을까. 순간에 대한 후회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쓸모없는 행동 중 하나다. 또한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의 감정을 완전하게 이해하진 못하기에 무의식적으로 큰 상처가 될 말을 한다. 과거의 내가 무심코 내뱉었던 무거운 말들에 대해 가끔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아 하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있다. 비수가 됐던 말의 무게를 어머니는 홀로 오랜 시간 동안 한없이 덜어내셨을 텐데.


군 전역 후, 적금을 깨 혼자 떠났던 유럽 여행을 배웅해주시러 어머니는 공항까지 함께 했다. 공항에 막 도착했을 무렵, 어머니는 면세점을 가기 위해 여권을 챙겨 왔다며 면세점을 가자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막상 면세점에 혼자 들어가자 막 눈물이 났다. 앞에선 "티켓이 있어야 면세점을 이용하는 거야, 맞아 나도 항상 헷갈렸어!"라고 애써 밝게 말했는데. 내가 성인이 된 후 가장 가슴 아픈 순간 중 하나다. 작년 여름에 어머니와 함께 후쿠오카에 2박 3일간 다녀왔다. 아침 7시 비행기 일정이 있어 집에서 4시에는 나가야 한다는 말에 설레는 표정으로 알람 여러 개를 맞추시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공항으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도 체크인을 하러 가는 순간까지도 수학여행을 떠나는 여고생처럼 들떠 계셨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의 신혼여행 이후 어머니는 25년 간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고 하셨었지. 여행하던 내내 너무도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내가 당신의 모자이고, 편히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주고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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