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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노 May 13. 2019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적어놓았지만, 사실 아빠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다. 초등학생 때 철없이 부르던 그 호칭이, 20대가 넘으면 자연스럽게 아버지라고 변할 줄만 알았다. 아버지. 아직도 이 세 글자는 내게 어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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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술 냄새가 싫어 잠든 척하는 내게 여러 말씀을 하셨었다. 평소 무뚝뚝하던 아버지는 내게 "우리 준오, 아빠가 제일 사랑하는 거 알지?"라는 말을 꺼내곤 하셨다. 잠든 아들한테만 꺼낼 수 있는 진심의 한 마디.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대부분 이렇지 않나.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이 선명한 순간은, 내 전공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셨을 때다. 의상학과라는 전공을 택했을 때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지 않으셨었다. 힘든 진로를 예상해서 걱정하셨던 것인지,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에 대해 명확한 이분법적인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날도 내게 사랑을 전하시면서, "오늘 아빠가 친구들 만나고 왔는데, 우리 아들 전공이 패션이라고 하니까 다들 멋지다고 하더라. 그래서 너무 자랑스럽더라." 라는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아들 자랑을 수 없이 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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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교육대에 있을 때 아버지가 내게 인터넷 편지를 써 주신 적이 있다. 하루에 한 통밖에 보낼 수 없는 인터넷 편지를 당신이 쓴 것 같아 미안하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시작해, 대한의 건아로 몸 건강히 지내다 오라는 꽤나 긴 내용이었다. 인터넷에 익숙지 않은 아버지가, 직접 인터넷에 들어가 편지를 쓰는 모습을 상상하니 눈물이 멈출 수 없이 흘렀다. 시간이 지나 내가 상병 즈음 됐을 때, 아버지는 면회를 오셨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들은 아이스박스와 함께. 평소 많은 대화로 내 취향을 잘 알고 있는 어머니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그의 아들을 생각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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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에 방영된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조성모 씨 부자에 대한 클립 영상을 봤다. 그가 손자와 함께 병실에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간 장면이었다. 아흔이 넘으신 그의 아버지는 "건강하게 자라주어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며 어린아이처럼 펑펑 우셨다. 아무리 담담하려 해도 울컥해지는 부모와 자식 간의 감정.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보다 더 깊이 있게 느껴지는 감정이 있으랴. 그와 함께 자연스레 어느덧 6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언제인가 싶다. 학교에 다닐 때면 직업의 특성상 밤에 일하시는 아버지와 마주치지 못하는 날도 많았는데. 지금의 모습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에, 또한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무뚝뚝한 부자 사이는 오늘도 평범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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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이번 3월 말 아버지와 단둘이 트래킹을 떠날 것 같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는 것을 '함께' 해본다는 사실에 벌써 기분이 가득 부풀어 오르는 것만 같다. 갈수록 작아 보이기만 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이러한 경험이 소소한 행복이 되길 바라며 그 시간 또한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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