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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노 Nov 05. 2019

깊숙이 버린 말들

 내 능력이 여기까지 인 것만 같아 당신에게 짜증을 냈었다. 그럴 때마다 "잘 될 거야, 왜 인재를 못 알아볼까?" 혹은 "기분도 꿀꿀한 데 너 그때 이쁘다고 했던 옷이나 구경하러 갈까?" 라며 돌아오던 대답.


방에서 기계처럼 자기소개서를 쓰다 문을 나서면 당신은 항상 소리도 나지 않는 TV를 보고 있었다. 정말 괘씸하게도 나는 이런 배려마저 싫었던 적이 있다. 나 때문에 바뀌어버린 집안 분위기가 괜히 민망했을까, 그 무거운 공기를 더는 견디기가 힘들었기 때문일까. "엄마, 괜찮아 하나도 안 시끄러우니까 소리 켜고 봐도 돼", "너한테 방해될까 봐". 너무 죄송해서 오히려 화가 치밀었다. 이어진 자책이 또다시 당신을 향한 이유 없는 짜증으로 변모했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할퀸 적이 많았다.


장난기 많던 아들은 집 안에서 늘 무표정이었고, 잔뜩 날을 세우기 일쑤였다. 어느 날 TV 소리를 크게 해 놓고 방문을 굳게 닫은 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꽤나 지친 목소리 끝에 내쉬는 한숨, 마침내 당신의 입에서 나온 "나도 너무 힘들지". 이 시기를 겪으며 혼자 감정을 삭힌 적이 굉장히 많다. 또 눈물이 많아졌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탓하며 부정적인 시야를 갖게 된 것일까.


"엄마, 곧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어". 입 밖으로 꺼내기만 하면 되는 말을 오늘도 나는 저 깊숙이 누구도 볼 수 없는 곳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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