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속 파내고 밥 담을 담았습니다. 멸치 볶음과 김치 그리고 김을 접시에 덜고 상에 놓았습니다.
이것이 제 기억 속 부모님께 차려드린 첫 번째 밥상이었습니다. 일요일 11시쯤이었습니다. 아침과 점심을 한 번에 먹는 일명 '아점'을 먹을 시간이었습니다. 엄마께서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다 컸는데 한 번 밥을 차려보지 않겠니?" 말씀하셨습니다. 그 동안 부모님께 밥 한 번 차려드린 적이 없던 것 같아 "그럼 오늘 아점 요리사는 나!"라며 당차게 외치고 주방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막상 상을 차리려니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괜한 자존심에 부모님께 절대 부억으로 오지 말라며 소리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에 있었습니다. 바로 오렌지였습니다! 순간 머릿속에 호박, 양파와 같이 둥근 속을 파서 밥을 넣어 먹는 한 예능 프로그램의 장면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이거다!'생각한 저는 망설임 없이 오렌지 윗부분을 잘라내고 속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흰 밥을 퍼서 오렌지 속에 꾹꾹 눌러담고 잘라둔 윗부분을 뚜껑처럼 덮었습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음식이야!' 생각하며 냉장고에 있는 멸치볶음과 김치를 접시에 덜어 상을 차려갔습니다. 부모님께서 눈도 즐겁고 코도 즐거운 밥상이라며 맛있게 드셨습니다. 제 스스로가 뿌듯했고 다음에 다른 음식을 만들어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스무 살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딸이 차려준 밥이라 맛있게 드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렌지+밥=? 현재의 저라면 상상도 못할 조합이었을 것이고 먹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부모님의 사랑이었고 애정이었습니다. 각자의 삶을 바쁘게 사는 요즘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예전처럼 쉽지 않아졌습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을 이야깃거리삼아 네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