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F를 용서할 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혼 과정, 이혼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도 싫었다.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모든 게 꿈같았고 꿈이길 바랐다.
F를 데리고 집에 왔더니, 사랑스러운 아들, 딸이 할머니(장모님)과 재밌게 놀고 있었다.
나는 다시 힘을 내서 아이들에게 웃음을 보이며 늦어서 미안한 마음에 아이들과 같이 장난을 쳤다.
F는 손목 붕대를 장모님과 애들에게 회사에서 짐을 옮기다가 다쳤다고 설명했고, 걱정하는 아이들과 달리,
장모님은 믿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음날, 나는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해 휴가를 쓰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장모님은 어제 F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고, F가 회사에서 야근을 하며, 상사에게 시달려 안 좋은 생각(회사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자살 시도)을 한 거 아니냐며 나에게 걱정스러운 말을 건넸다.
그동안 F의 잘못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던 나는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해서 한 마디 했다.
"F가 야근한다고 새벽에 들어오고 밤새고 아침에 오는데, 그게 진짜 인지 모르겠어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장모님도 F의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심? 했었던 건지 한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며 입을 여셨다.
"미안하네, 미안해. 자네한테 다 미안하네."
장모님께서 그 일들을 알고 계셔서 미안한다고 하신 건지, 모르지만, 혹시 사실일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미리 사과를 하신 건지는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는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고, 이 모든 상황들을 어떻게 끝내야 될지도 모르겠었다.
그렇게 무기력한 하루하루가 모여 며칠이 지났다.
나는 또 한 번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죽을 생각까지 할 정도면 이제 다시 그러지 않겠지?, 모든 걸 포기할 생각이었을 텐데, 설마 또 그런 생각을 하겠어?, 설마 또 바람피우겠어?'
이혼 과정, 이후의 삶에 대해 두려움이 있어서 인지, 나는 어리석게 F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용서는 아니다. 용서를 할 수는 없다. 평생.
다만, 아이들에게 가족의 행복을 뺏을 수는 없다는 짧은 생각으로 다시 한번 F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