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렇게 만만하니?
우린 잠시나마 다시 평화를 찾은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여전히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었고, F(전 배우자)는 여전히 회사 야근, 회식 등을 핑계로 밤늦거나 새벽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퇴근 후 집에서는 최대한 웃으려고 노력했다. 억지로 웃는 내 모습에 현타가 오기도 하고 더 슬플 때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만, 버티기 힘든 날에는 아이들에게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일찍 방에 가서 잠을 잔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F가 회식을 했다. 거래처와의 저녁이기 때문에 연락하기가 어렵다며 끝나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잠자리에 가기까지 연락이 없었다. SNS를 보냈지만, 읽지 않는다. 전화를 했다. 역시 받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그냥 믿고 신경 안 쓰겠으나, 경험이 있기도 하고 이날은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좀 싸했다.
아니나 다를까, 출근하기 위해 5시에 일어났더니, 그제야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아닌가?
"왜 전화 안 받았어?"라는 나의 물음에 F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미안 폰을 잃어버려서 받을 수가 없었어."
"......"
나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아직 불륜이 밝혀지고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이런 일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평소에 폰을 손에 달고 사는 F가 폰을 잃어버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잠시 지하주차장에 둘렀다. F의 차,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F가 타고 다니는 내차에 타봤다. 왠지 폰이 차에 있을 것이라는 나의 직감은 스스로 울리는 알람소리를 듣고 틀리지 않았다는걸 알았다.
내가 차에 타는 순간, F가 일어나려고 미리 맞춰놨던 폰 알람이 우렁차게 울렸다.
'역시 거짓이었구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숨겼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폰을 봤다.'
D와 주고받은 대화 메시지를 보고 나는 어젯밤에 왜 연락이 안 됐고, 새벽에 집을 들어왔는지 알게 됐다.
거래처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술이 취할대로 취한 F는 집에 오는 택시를 부른 게 아니라, D가 살기도 하지만,
둘이서 다니던 호텔이 있는 동네, 그곳으로 택시를 부른 뒤, D를 만났던 것이다.
그리고 중단된 대화에 이어서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인 두줄이 나와있는 코로나 검사키트 사진을 D에게 보낸 것을 봤다.
'코로나 검사 결과를 왜 보냈지?'라는 짧은 생각을 했지만, 나중에 이 사진이 가져올 큰 여파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또 나를 또 속였다는 배신감에 '우린 끝난 거였었는데, 내가 억지로 우리 가정을 끌고 가려고 했던 거였구나, 이젠 그만해야겠다. 더는 자신이 없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출근하는 버스를 타려고 이동했다.
'모든 게 끝났다. 내가 혼자 괜찮은 척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F의 지난 행동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겠다. 모든 게 이제 끝났다.'라고 생각했다.
버스를 막 타려는 찰나에, F에게서 잃어버린 폰을 찾았다면서 연락이 왔다.
나의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있어서 그랬는지, 더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힘조차도 없었다.
그냥 내 마음을 그대로 얘기했다.
"됐어, 다 그만하자, 이혼하자. 네가 깨끗하게 받아주면 끝내고, 못 받아주겠으면 얘기해. 변호사 선임하고 소송해 줄 테니 깐."
"갑자기 왜 그래, 왜 이혼하자는 거야." 전과 같이 F는 뻔뻔했다.
"됐고, 이혼해." 나의 첫 번째, 이혼하자는 통보였다.
"......" 나의 단호함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F가 갑자기 새로운 사실을 고백했다.
"나 사실 임신했어. 우리 셋째가 생겼다고" 나는 당연히 믿지 않았고, 내가 믿지 않자 F는 나에게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그 사진이 바로, 내가 코로나 검사키트 사진으로 생각했던, F가 D에게 먼저 보냈었던 그 사진이었다.
'아 이게 코로나 검사 키트가 아니라, 임신 테스트기였구나.', '아? 어? 근데 이걸 왜 D한테 보냈었지?'
나는 F의 임신이 나와는 관련이 없고 D와 관련된 것이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