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가 다시 이별을 통보하다.
똑같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집안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흘러가는 시간들이 모두 다 똑같았다.
불륜에 대한 배신감, 충격, 상처로 가득한 '나'만 아무일 없다는 듯이 웃고 있으면 그 전과 다를 것 없이 우리는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눈물이 많아졌다. 아직 충격을 받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도 갑자기 눈물이 흐르고, 걸어가다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보기만해도 나 자신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또, 동네 꼬마 애들을 보더라도 우리 애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흘렀다. 나만 괜찮은 척하면 모든 게 문제없는 이 상황이 싫기도 했다. 나만 빼고 세상 모두가 행복하게 보였고 나는 한없이 슬픈 감정에 휩싸여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참고 이겨내야 했다. 내가 중심을 못 잡고 무너지면 우리 애들은 더 충격을 받을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만약 F(전 배우자)가 D(전 배우자의 애인)에게 가버리기라도 하면 애들이 받을 상처는 나보다 더 클 테니깐, 어떻게 해서든 남아있는 우리 가족,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정신을 잘 차리고 중심을 잡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 상처가 가시지 않은 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위해 웃음을 짓는 게 너무 힘들고 슬펐다. 너무 괴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안 되겠다. 가족여행을 가서 머리와 마음을 정리하고 와야겠다.
여행 가자는 말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신이 났다.
드디어! 여행 가는 당일날 아침, F가 갑자기 날 불렀다.
"나 아무래도 안 되겠어. 우리 프리하게 살자. 지금 가정을 유지한 채 서로 밖에서는 자유롭게 살자. 누구를 만나던지, 연애를 하던지 밖에서는 자유롭게 살자."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내가 뭘 들은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머리가 하얗게 돼버렸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F가 한마디 더 붙였다.
"인정 못할 거면 그냥 이혼해. 나는 다시 예전처럼 살기 싫어. 그냥 자유롭게 살고 싶어. 단, 가정은 잘 지킬 테니 밖에서 하는 행동들은 신경 쓰지 마."
"대답해 이혼하던지, 그냥 자유롭게 살면서 가정을 유지할지"
내가 불륜 피해를 당한 피해자?인데 내가 이혼 통보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돼버렸다.
내가 알던 F가 아닌 거 같았다. '연애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돼버린 거지?' 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왜 그래, 잘하기로 했잖아. 자꾸 이러면 내가 버틸 수가 없어. 나도 간신히 버티고 버티고 버티고 있는 거야. 제발 이러지 말고 우리 다시 잘해보자."
나는 애원했다. 일단은 이혼은 막아야 되니, 그러지 말라고, 우리 좋았었던 상황을 생각해 보라고, 애들을 봐서라도 그러지 말라고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원했다.
'이게 맞는 건가?, 평생을 이렇게 살자고?, 이게 가능해?, 이런 사람들이 또 있나?, 이해 못 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대부분의 부부가 이런 건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정상적인 가정은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나만, 버티고 잘 이겨내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내가 어떻게 해야 되지?'
수만, 수천 가지의 생각이 머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일단 알았어. 알겠는데, 조건이 있어. 이 걸 어겼을 경우 나도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끝이라는 거야. 첫째, 애들이나, 가정에 충실해. 둘째, 어떤 상황이던지 내가 그만하라고 하면 모든 행동을 멈춰. 셋째, 어떠한 상황에서도 거짓말은 하지 마."
어느 정도까지 이해를 해줘야 되고, 어떤 생활을 한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혼은 막아야 하니 안 들어줄 수는 없고, 짧은 시간에 생각해 낸 조건 세 가지를 얘기했다.
미쳤다. 제정신이 아닌거 같았다. 뭘 어떻게 해야될지도 모르겠고 그냥 정신이 나간거 같았다.
내 조건에 당연히 수긍하겠다는 의미인지, F는 미소를 지었다.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마치 '이제 모든 게 내가 원하는 대로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뭘 한 거지? 이게 맞는 건가?'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한 채 우린 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