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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 영혼 Sep 04. 2021

나는 지금 유령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프리랜서로 활동했던 여행가의 삶을 접었다

커튼을 내렸다. 여행가로 사진가로 활동하며 보낸 지난 9년간 내 삶의 시간들로부터.

그 시간 속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도 소통의 창을 닫아걸었다. 네이버 인플루언서에 모아진 6개의 SNS 채널도 2020년 10월부터 모두 멈추었다. 전화 카톡 문자 그 어떤 것에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돌아보지 않고 미련두지 않으며 흔들리지 않으리라 작심했기 때문이다.


마치 유령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진 내 삶의 패턴, 불통이 된 사람들과의 관계, 오직 새로 시작한 일에만 몰입 중인 지금의 상태가 그렇다.


이렇게 다른 삶의 방향을 선택한 건 내가 원해서가 아니다. 그러했기에 결심한 순간 거친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눈물로 밀어내기도 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서로 다른 일상을 맞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함께 살아가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남편은 20년 넘게 해 오던 사업을 접었다. 50대가 새롭게 사회에 적응해 일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육체적으로 힘을 써야 하는 일들 뿐이었다. 남편은 체력이 약한 편이다. 어떤 일이건 해보겠다고 홀로 힘겹게 헤엄치는 그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내 일 때문에 집을 비울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존심인 미안함이었는지 도와달라 소리는 못하고 혼자 애쓰고 있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기까지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내 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평생 나와 함께 할 사람을 택한 것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나하나 새롭게 배우고 생계를 위해 선택한 낯선 일. 팀을 이루듯 둘이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이 어두운 터널을 조금이라도 빠르게 벗어나 그와 함께 환한 빛을 맞이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그날이 오면 내가 선택한 지금의 이 시간들이 후회 없는 선택이었노라 말하리라. 나는 지금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유령과 같은 아픈 시간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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