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계약한 토지 잔금을 11월에 치렀다. 농지라서 추운 겨울철이야 그냥 내버려 둔다지만 당장 내년 봄부터는 그냥 방치해 둘 수도 없다. 토지 계약 때부터 집 짓기와 정원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탐색 중이다.우선 농막을 놓고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듀얼 라이프로 살아볼까 싶기도 하다.
시골살이 쉬운 게 아니네
도시에 살면서 전원생활을 갈망했지만, 막상 내 앞에 현실로 다가오자 생각지 못한 어려움과 복잡함이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우선은 경제적인 문제 해결이다. 소박하게 집을 짓고 걷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주거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자면 현재 살고 있는 도시의 주택을 처분해야 한다.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던 부동산 가격과 거래가 주춤해질 무렵 집을 내놨다. 지금껏 매매는 성사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많이 서운해한다. "지금 이 집 팔고 시골 가면 절대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이다음에 다시 오셔야지요."정 필요하면 전세를 놓으란다. 이런 복병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왜 그렇지 않겠는가. 유치원부터 대학 다닐 때까지 줄곳 살아온 동네다.살기 좋은 주거 환경과 이 집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말이다.
현재 큰 아이는 직장 근처에 원룸 전세로, 작은 아이는 내년 대학원에 진학 예정으로 얼마 전 학교 근처 월세를 계약한 상태다.
5평짜리 원룸에 월세 50 만원, 거기에 관리비를 내야 하고 전기 가스 요금 등 각종 세금과 보증금 이자까지 부담해야 한다. 생활비까지 월 100만 윈이 훌쩍 넘는다. 세내기 직장인도 부담스러운 주거비다. 하물며 아직 학생 신분이다. 학교 연구실에서 받는 수입은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니 부모가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는 한 학자금 대출이나 은행 대출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두 딸에게 부모 지원은 대학까지로 선언했기 때문에 대학원부터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결혼해서 독립한 건 아니지만 일단 경제적으로 아이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씩씩하게 잘 헤쳐 나가리라 믿고 지켜보려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이 좁은 원룸에서 생활하다가 주말에는 부모가 있는 집에서 좀 쉬어 갈 수도 있는데 이곳을 떠나 시골로 가버리면 그것조차 힘들겠구나 싶었다.
큰 아이는 어느새 직장 3년 차다. 세계지도에 점을 찍으며 여행도 자주다니다 보니집에 오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둘째는 아직 학교를 다녀야 하거늘 주말이면 집에 와서 쉬고 싶어질 텐데 그도 마음에 걸린다.
집짓기 상담이나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건축박람회
껑충 뛰어오른 건축 자재비, 소박한 집 짓기는 어려워지고
그동안 건축박람회도 몇 번 다녀보고 여러 매체들을 통해 다양한 집들을 접해보았다. 한옥, 모던 한옥, 목조주택 모듈러 주택, 황토집, 농막 등 수많은 집 구경을 했다. 이제 주택도 공장에서 제품 생산하듯 기계화된 첨단 공정으로 만들어 원하는 위치에 운송하면 되는 시대다. 처음엔 부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현장 노동자도 점점 귀해지고 사람이 손으로 맞추어 자르는 것보다 기계화되면 더 정확하게 맞출 수 있고 공사 기간도 단축될 수 있다에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인건비도 줄일 수 있으니 비용 절감도 된다는 장점들이 있다. 이런저런 다양한 집들 중에 우리의 관심사로 좁혀진 게 모던 한옥, 황토구들 집, 모듈러 주택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턱없이 오른 건축 자재비다. 토지를 구매하고 집 짓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결코 소박한 시골살이 수준이 아니다. 도시처럼 살다 보면 집값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들어가는 순간 몇 년은 수익은 제로라는 각오로 투자와는 거리가 먼 시작이다. 그런데 이렇게 고비용을 지불해 굳이 불편한 시골살이를 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산을 훨씬 뛰어넘는 비용을 지불하고도 내 마음에 딱 맞아떨어지게 집을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던 차 우리도 직접 집을 지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 날 황토집의 매력에 끌렸다. 자료 수집 중에 건축주가 직접 집을 짓고 살며 숙박도 할 수 있는 곳을 알게 됐다. 황토집도 체험해 보고 여행 삼아 다녀오기로 했다.
그곳을 다녀오며 뜻밖의 정보를 또하나 알게 됐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싱가포르에서 온 우퍼가 우핑 중이었다. 오미크론이 퍼지기 바로 전에 운 좋게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곳은 우프 호스트 농가였던 게다. 무릎을 탁 치며 세상에 진작 이런 게 있는 줄 알았다면 최소 1년간은 전 세계 농장을 돌아다니며 땅 없는 농부로 살아보았으면 좋았을 걸 했다.
집으로 돌아가 우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회원 가입 후 첫 활동할 곳을 하룻밤 묵었던 이곳에서 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하룻밤 묵었던 강원도 영월의 아마라벨리
새롭게 알게 된 우프
우프는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의 약자로 1971년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며,
유기농가 및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곳에서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것으로 전 세계 180여 국가에서 활동할 수 있다고 한다. 신뢰와 지속 가능한 글로벌 커뮤니티 구축을 목표로, “비 화폐 교환”에 따른
문화 및 교육 경험을 촉진하며 유기농가와 자원봉사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운동이다.
친환경 및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우퍼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경험과 삶의 철학을 나누는 농장주를 "호스트"라고 한다. 그리고 우프 호스트 농가에서 숙식을 제공받고 일손을 돕는 봉사자를 "우퍼"라고 한다. 우퍼나 호스트로 활동하고 싶다면 연회비를 내고 멤버십 신청을 하면 된다. 우리나라에는 우프를 통하여 친환경적이고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려는 국내외 사람들의 교류를
돕는 사단법인 비영리 단체인 '우프 코리아'가 있다.
시간은 흐르고 뜨겁게 달구어진 마음은 식어간다
다녀와 금방이라도 우퍼로 다시 찾을 것처럼 달아올랐던 마음이 시간이 지나며 식어가기 시작했다. 작은아이 이사할 집도 알아보고 연말이다 보니 막상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우프코리아에 들어가 호스트 리스트를 살펴보니 겨울철이라 우퍼를 받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다녀왔던 곳은 사계절 우퍼를 받고 있어 1월쯤에 짝꿍과 같이 며칠간만이라도 시간을 내서 우핑을 해볼 생각이다.
이렇게 2021년의 마지막 하루를 보내고 있다.새해 다짐은 조급해하지 않고 순리대로 새로운 일상을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