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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땅 Nov 28. 2023

이런 상상도 가능합니다

2023년 1월 기준 수도권 아파트의 중위가격이 5억 9167만 원이라고 하니, 현 수도권 아파트의 중위가격을 6억 원이라고 해보겠습니다. 제게 6억 원이라면 돈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우선 저라면 수도권에 5억짜리 아파트를 하나 사서 월세를 줄 것 같습니다. 보증금 3,000만 원에 120~13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받으면 아파트를 두고 귀농귀촌을 하더라도, 당장 수입이 끊기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1억으로는 지방의 구축 아파트를 알아볼 것 같습니다. 신축 아파트는 지방도 2~3억 하지만, 구축 중에는 넓은 평수에도 불구하고 1억이 채 되지 않는 아파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지역에서 사는 게 어떤지 알 수 없으니 우선은 전/월세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겠지만, 지방 아파트들은 자가보유율이 수도권 보다 높아 매매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만큼 전/월세를 찾기 어렵고요. 저희 부모님은 지방에서 90년대 초반에 지어진 아파트에 거주하고 계시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게 단점 이긴 하지만, 27평형 아파트의 시세가 9,000만 원도 하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 농협 하나로마트가 있고, 초등학교도 100m 이내 거리에 있는 좋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요. 물론 신축아파트를 선호하신다면 수도권 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그 돈으로 신축 아파트를 구매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세법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공시지가 3억 원 이하 지방 저가주택의 경우 주택 수 산정에서 제외되며, 1 주택자의 경우 보유 주택이 기준시가 9억 원 이하면 임대수입도 비과세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더해 앞서 말씀드렸던 영월의 사례처럼, 각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귀농귀촌 정책 지원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면 크지는 않더라도 추가로 소소한 수익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귀농인의 집이나 자녀 농촌유학 프로그램 등을 활용하시면 잠시지만 집을 마련하는데 드는 비용을 아끼실 수도 있습니다.


직장 퇴직 후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건강보험이 걱정되신다면, 국민건강보험의 임의계속가입 제도를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퇴사 후 2개월 내에 신청하시면 임의계속가입을 통해 지방보험료 대신 직전 직장에서 내던 보험료 수준의 금액을 36개월 간 납부할 수 있어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습니다.




2023년 초, 전라남도 화순군은 새로운 실험에 나섰습니다. 18세~49세 청년이나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보증금 없이 월 1만 원만 내면 최대 6년 간 지역의 20평 아파트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만원 아파트' 사업이 바로 그것인데요. 2023년 상반기에 처음으로 50세대를 모집하였고, 경쟁률이 10:1이 넘을 만큼 신청자가 많아 추가로 52세대를 더 모집하였다고 합니다. 두 차례 모두 외지인 신청비율이 50%나 되었고요. 사업이 성공하자 전라남도 차원에서도 해당 정책을 지역소멸 위기에 처한 도내 16개 군으로 확대,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다른 시도에서도 벤치마킹을 하러 온다고 하고요.


제가 보기에도 참 매력적인 정책입니다. 집만 해결되면 나도 내려갈 수 있다는 생각, 여러분은 들지 않으세요?


화순군 만원 아파트 전경


참고로 화순군 만원 아파트의 지원 자격요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화순군에 살거나 입주 예정인 신청일 기준 월 소득 311만 7000원 이하 18~49살 청년이거나 연간 합산 소득 6000만 원을 넘지 않은 혼인 신고 7년 이내 부부다. 자녀가 많거나 화순군에 직장이 있으면 우선순위 대상에 들어간다. 저소득층 주거급여, 국가나 지자체 주거지원사업 등의 지원을 받았거나 공무원, 군인 등은 대상에서 제외한다. 입주자는 서류심사 등을 거친 후 추첨을 통해 선정된다.




전 대출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저를 구속하는 족쇄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대출이 있다면 운신의 폭이 좁아집니다. 연 5%로 1억 원을 대출받았다고 하면, 이자만 1년에 500만 원, 월 40만 원 이상을 정기적으로 갚아나가야 합니다. 25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 직장인이라면 이 돈만으로도 현재의 직장을 그만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돼버리는 거죠. 강신주 님이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에서 말한 것처럼 멈출 수 있어야, 혹은 그만둘 수 있어야 자유입니다. 


대출이 없는 삶은 자유롭습니다. 조금의 저축만 있다면 귀농귀촌과 같은 커리어의 전환이 필요할 때, 용기 있게 행동에 나설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저축의 또 하나의 좋은 점은 ... 내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 은행에 있는 현금은 우리가 커리어를 바꾸고 싶을 때, 일찍 은퇴하고 싶을 때, 어떤 걱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을 때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는 인생에 있어 대단한 혜택이다. 이 가치를 수치화할 수 있을까?"

모건 하우절 <돈의 심리학> 중에서


이자율이 낮아 너도나도 은행에서 부담 없이 돈을 빌리던 시절, 제 주위에도 '물가상승률 보다 싼 대출을 왜 받지 않느냐?'며 저를 바보 같이 바라보는 분이 계셨습니다.


뭐, 그분 눈에는 정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대출을 받아 그때 서울에 집을 장만했다면, 조금이라도 부동산이 올랐으니 재산을 조금 더 늘릴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반농반X라는 건 시도도 해보지 못했을 테고, 조금의 돈이라도 더 벌어 대출금을 갚기 위해 야근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 아이가 바라는 건 저와 함께 하는 시간이지, 제가 벌어오는 돈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이런저런 귀농귀촌 지원 정책을 보고 있으면 고개가 갸우뚱 해집니다. 죄다 대출입니다. 귀농인 융자지원이란 명목 하에 주택 구입, 농지 구입, 농기계 구입 등 다양한 부분에서 대출을 유도합니다. 물론 정부에서 지원해 주니 이자율이 2% 전후로 낮기는 합니다. 하지만 빚은 빚입니다. 귀농이나 귀촌 후 이자율이 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덥석 대출을 받기 시작하면, 어느새 또 족쇄가 채워지고 맙니다. 귀농귀촌이 갑갑한 도시생활의 탈출구가 될 수는 있지만, 모두가 만족하고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요즘은 그래도 이른바 '묻지마 귀농' 행렬이 많이 줄고, '준비된 귀농'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귀농귀촌학교가 많이 있고, 여러 지원 정책의 자격요건으로 '100시간 귀농교육 이수' 등의 조건이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미래는 모르는 것이죠.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막상 현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교육도 받고, 인근에 땅도 사서 농사를 지어보고 있지만, 내려가서 제가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만원 아파트도 등장을 했으니,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귀농을 해도 농지를 구하는 게 어렵다고들 하는데, 정부에서 토지를 매입하고 이를 귀농인들에게 빌려주는 것이죠. 대신 빌려준 대가는 귀농인이 해당 토지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에 일정 비율을 정해 조금만 받아가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1,000평의 토지에서 500만 원의 수익이 났다면 그 수익의 5%인 25만 원만 국가에 되돌려주는 것이죠. 수익이 없다면 한 푼도 받지 않고요.


농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입니다. 우리 농산물 없이는 우리의 삶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스스로의 귀농귀촌이 실패하더라도 너무 걱정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훌훌 털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면 되거든요. '월든'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정작 월든 호숫가로 들어가 집을 짓고 자연을 벗 삼아 홀로 지낸 시간은 2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박혜윤 님의 <도시인의 월든>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이것이었습니다. "인생의 어떤 것은 모순이고, 어떤 것은 실패이고, 어떤 것은 성공인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삶이다."


그러하기에 어떤 삶을 살아가고 어떤 시도를 하시든, 당신의 삶에 용기를 가지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깎아내리지 마라. 그런 태도는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꽁꽁 옭아매게 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지금까지 살면서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자신을 존귀한 인간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결코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누구로부터 지탄받을 일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런 태도가 미래를 꿈꾸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저래로 잊지 마라.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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