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형태로 새롭게 일을 하며 도시농부학교를 다니는 반농반일의 생활도 이제 어느 덧 많이 익숙해졌다.
풀타임이 아니다 보니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쉴 수 있다. 거기다 출퇴근에 드는 시간이 없으니 기본적으로 삶에 여유가 넘친다. 일한 시간만큼 보상을 받으니 간혹 일이 너무 적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다 아내 덕분이지만...
다만 코로나19가 복병이었다.
작년만 해도 아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봄수업이나 방과후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오후 4~5시가 되었으니, 아무 걱정 없이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시간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더해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전교생의 1/3만 등교한다는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아이가 주 1회, 그것도 오전에만 잠깐 학교를 다녀온다. 자연스레 오전, 오후 온라인 학습을 내가 직접 봐줘야 하고, 점심 식사도 내가 준비해서 차려줘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 이사 오며 전학까지 온 터라 아직 같이 놀 친구가 없다.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들과 대화조차 못하는 환경에선 친구를 사귈래야 사귈 수가 없다;
심심해와 놀아줘를 달고 사는 아이와의 불편한 동거... 매주 토요일 도시농부학교 수업에도 매번 데려가니, 거의 내 몸의 일부처럼 함께 하는 느낌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내 아이이긴 하지만 일을 할 때는 뭐 하나 집중할 수가 없고 짜증만 늘어간다.
최근에는 요리도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집에 있다 보니 매일 출근하는 아내의 눈치가 보였고,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긴장과 대치 국면 속에서 더 이상 '요리는 죽어도 못한다'는 주장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게 은근 재미있다.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요리는 젬병일 줄 알았는데 유튜브 방송을 보고 이것저것 따라하다보니, 이제는 국간장과 액젓, 참기름 등 넣는 재료에 따라 변화하는 요리의 맛을 구별하기 시작하는 단계까지 올라왔다. 물론 아직까지 뭐하나 혼자 할 줄 아는 요리는 극히 드물고, 매번 레시피가 생각나지 않아 유튜브에서 백종원 OO를 검색한 후 따라하고 또 따라할 뿐이지만.
이런 생활이 사실 쉽지는 않다. 아이 아침 간식부터 하루 2끼 식사 준비에 설거지, 청소, 거기다 내 본업까지 하려면 가끔은 주객이 전도됐단 생각에 분노 게이지가 폭발하기도 한다. 그래도 직장 생활에 비하면 천국이다. 일이 많아져도 천국이다. 이건 뭐 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인간관계로 인한 스크레스가 없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축복이다. 그래도 도시농부학교와 텃밭이란 탈출구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겠지?
다만 고민되는 부분은 과연 이런 삶을 지속할 수 있을까?란 근원적인 질문. 도시농부로서 작은 텃밭을 일구는 삶이 나와 내 가족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도 알겠고 다행히 지금 하는 일의 계약도 1년 더 연장하였지만, 난 아직 반 백살이 되기에도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젊은이다.
여전히 내가 조급한 걸까?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란 없다. 그날이 그날인 것 같아도 인간은 천천히 어느 지점인가를 향해서 간다. 헛되이 거저 지나가는 시간은 없다.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인 조급증과 욕심 때문에 다만 실감하지 못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정희재 지음 중에서
서두를 필요는 없다. 천천히 주변을 살피고 내 안의 나와 대화하며 나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가 보자.
그럼 정말 회사를 졸업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