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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땅 Apr 26. 2021

알아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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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정부는 2014년 11월 12일, 내년도 의류 분야 최저 월 임금을 현 100 달러(미화)에서 128달러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캄보디아의 의류 산업은 국가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하고 50만 명에 가까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처음 이 소식을 듣곤 ‘참, 잘된 일이다’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캄보디아에선 작년 12월부터 봉제공장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여왔는데, 그 과정에서 올해 1월에는 경찰과 군의 유혈 진압으로  5명이 죽고 수백여 명이 다치는 불상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올 10월에는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에서 캄보디아 기획부(Ministry of Planning) 데이터를 인용, 수도 프놈펜의 빈곤선(poverty line)을 월 120달러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기뻐하기만 할 일이 아니었다.


캄보디아는 전체 전력의 절반 이상을 이웃 국가인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어 전력이 상대적으로 비싸고, 도로포장률이 낮아 물류에 소요되는 비용이 높다. 베트남의 전기료가 KW/h당 150-200 리엘(Riel, 캄보디아 화폐 단위)인데 반해, 캄보디아는 720-4,000리엘로 몇몇 지역의 전기료는 이웃 국가보다 10배나 비싸다.

 

캄보디아는 노동생산성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 추가적이고 가파른 임금 인상은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에 부담이 될 수 있으며, 높은 부정부패로 인해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에게 전해지는 뇌물이 업체 수익의 30%나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중국, 한국, 대만, 일본 업체들로, 들리는 바에 따르면 이미 많은 기업들이 이미 공장 이전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베트남만 하더라도 내년 최저임금이 140불이 좀 넘을 거라고 하는데, 높은 노동생산성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 물류비용 등을 고려하면 캄보디아보다 더 경쟁력이 높다. 그야말로 캄보디아는 저렴한 인건비가 무기였는데, 이제는 미얀마가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최저임금이 올라 노동자들의 지갑이 두둑해지고 이로 인해 소비도 증가해 국가경제도 성장하고 개인도 행복해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로 인해 기업들이 캄보디아를 떠나게 된다면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캄보디아는 의류산업을 제외하면, 농업과 관광밖에 없다. 그나마 호황인 건설업도 경제가 어려워지면 끝이다. 

 

UNDP 차원에서도 얼마 전부터 캄보디아 의류산업의 중요성을 고려, 이 분야의 에너지 효율성 향상에 초점을 둔 NAMA(Nationally Appropriate Mitigation Action: 국가 적정 감축 행동) 스터디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 사업 추진 과정에서 들어보니 대부분의 기업들은 에너지 효율 향상에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캄보디아의 비싼 전기세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에너지 효율이나 신규 설비에 투자를 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언제나 그렇듯 인건비가 인상되면 다른 나라로 떠날 준비가 돼 있다고 한다. 

 

이번 인상안이 정부 대표, 노동계 대표, 봉제협회(Garment Manufacturer’s Association in Cambodia: GMAC)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노동부(Ministry of Labor) 노동자문위원회(Labor Advisory Committee)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되기는 하였지만, 그간 월 170달러 인상을 줄곧 주장해 온 노동자들과 110달러를 주장해 온 봉제협회 회원사들이 이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도 미지수다.


앞으로 의류산업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참 궁금하면서도 걱정스러운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가지 재미난 건 노동자문위원회에서 123달러로 인상을 결정하였는데, 훈센 총리의 요구로 5달러가 더해져 128달러가 되었다는 사실. 사안의 민감성과 명백한 노동계의 수용 불가를 고려한 정치 9단 훈센 총리의 충격 완화 전략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1981년 캄보디아 내 친베트남 정권 수립 후 1985년부터 총리직을 수행해 온 훈센 총리는 이후 베트남의 철수와 파리 평화협정에 따른 내전 종식, 유엔 주도의 민주선거 실시 등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총리직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2013년 7월 총선에서는 제1야당인 구국당이 캄보디아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30대 이하 젊은 층의 폭넓은 지지를 바탕으로 128석 중 55석(여당 68석)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킴에 따라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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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캄보디아 정부는 호주 정부와 향후 4년간 4천만 불(400억 상당)에 해당하는 추가 원조를 지원받는 대가로, 현재 호주 정부가 남태평양의 나우루(Nauru)에 머물게 하고 있는 불특정 다수의 망명 신청자들(Asylum seekers)을 캄보디아로 이주시키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자국민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상당한 인권 유린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난민을 대신 수용키로 했다데 대해 여러 국내외 인권 관련 단체들의 비난이 이어지는 가운데, "망명 신청자들과 난민, 그리고 캄보디아의 국익(Asylum seekers, refugees and Cambodia's national interest)"이란 제목의 재미난 글이 New Mandala에 올라왔다.


필자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지난 2009년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의 폭동 이후 캄보디아에 망명을 요청한 위구르인 20명을 중국으로 강제 송환한 적이 있는데, 이 또한 캄보디아에 막대한 자금의 원조를 지원하는 중국의 눈치를 본 것으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두 사건을 통해 캄보디아 정부가 얼마나 대외 원조에 목을 매고 있는지를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대부분의 원조 자금의 경우 파트너국 내 인권 신장이나 제도/역량 강화 등의 여러 가지 조건이 붙게 마련인데 중국은 이런 조건 없이(no strings attached) 원조를 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금번 호주와의 합의에 따른 대가 역시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아 이것이 과연 진정한 캄보디아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묻고 있다. 


참고로, 2002-2010년간 캄보디아가 지원받은 공적개발원조(ODA) 액은 같은 기간 중앙정부 지출의 94.3%에 달해 원조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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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개월 간 많은 일을 하지는 않았다. 


내가 이 곳에서 할 일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나를 인터뷰했던 친구는 내가 부임했을 땐 뉴욕본부에 출장 중이었고, 다른 팀원들은 각자 바빠 보였다. 첫날 내가 오는 걸 모르고 있었다거나 제대로 된 오리엔테이션이 없었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팀장이란 친구는 한국으로 치면 직무대리 역할만 2년간 해오고 있었는데 내 일에 대해 나와 단 한 번의 미팅도 한 적이 없다. 내가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새로운 조직과 환경, 여기서 하는 일에 대해 무지했던 나로서는 그게 쉽지 않았다. 


2개월여 지난 시점에 고비가 찾아와 UNV 면담도 진행하고, 나름 supervisor로 지정된 또 다른 친구와 면담도 하였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즈음 다행히 뉴욕으로 출장을 갔던 친구가 돌아왔고 그 친구와 몇 가지 일을 진행하며 기력을 회복하나 싶었는데, 다시 똑같은 고비가 찾아왔다. 뉴욕에서 돌아온 친구는 현지 직원인데 뉴욕본부에 P3 자리를 얻게 돼 12월 말까지만 일하게 되었고, 난 다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다들 바쁘게 일하는 사무실에서 혼자 멍 때리고 있는 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고문'이다.    


한 인터내셔널 직원은 자신도 여기 처음 와서 거의 1년을 놀았다고 말하기도 했고, 여기 UNDP 사무소가 현재 구조조정(무슨 구조조정이 1년 반이나 걸리는지...)이 진행 중이라 대부분의 직원들이 업무에 신경을 못쓰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팀의 필요에 의해 사람을 받아놓고 이럴 수는 없었다. 특히, 같은 사무실의 현지 직원들이 업무 관련 내용 대부분을 현지어로만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힌다. 그렇게 서로 정보를 공유하니 팀 회의가 필요 없겠지... 일도 없는데 회사에 있는 게 너무 스트레스라 연말엔 2주간 휴가를 써버렸다.


그리고 새해 첫날, 나름 팀장이었던(?) 친구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팀 회의를 소집했다. 한 친구가 떠났으나 구조조정의 여파로 인력 충원은 없을 것이고, 자신의 팀장 직무대리 역할도 12.31로 종료(이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직무대리가 2년밖에 허용되지 않는다나? 암튼 현재 공식적 팀장이 없는 상황임)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 senior management (UNDP 정직원 3명으로 소장, 운영부문, 프로그램 부소장 각 1명)로부터 승인이 나지는 않았지만 임시적인 팀 내 업무분장 계획에 따라 내게도 새로운 업무가 '임시로' 주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프로젝트의 콘셉트를 개발해 프로젝트 문서를 작성하는 임무도 맡겨졌다. 모처럼 흥미가 당기는 일이긴 한데, 이젠 뭔가 바뀌려나? 


바뀌지 않으면... 여기서 2년을 버티는 거 자체가 도전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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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 되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지난 한 달간 이 곳에 온 이후 가장 바쁜 한 달을 보냈고, 직접 프로젝트 콘셉트를 개발하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 관리에도 참여하고 있다. 예전처럼 여유(?)가 없어진 게 살짝 아쉽긴 하지만, 뭔갈 하고 있다는 생각에 요즘은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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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기후변화 분야에서 활동하며 가장 아쉬웠던 건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ODA 규모만 놓고 봤을 때 캄보디아는 한국 정부의 26개 중점지원국 중에서도 베트남에 이어 두 번째로 지원을 많이 받는 국가이지만, 지난 7개월간 이 곳에서 일하며 'Korea'의 'Ko'자도 들어본 적이 없다.


기후변화가 캄보디아 국가협력전략(CPS, Country Partnership Strategy) 상의 중점 지원분야는 아니지만 범분야적 이슈로서 여러 분야(특히 농업)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고 한국에서도 중앙정부부터 지자체까지 이를 주류화(mainstreaming) 하기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는데, 두 달마다 UNDP 주도로 개최되는 기후변화 분야 실무자급 개발협력 파트너 미팅(Developmemt Partners meeting)이나 여타 공여기관 간의 협의를 위한 자리 어디에서도 한국 측 인사를 만난 적이 없다.


이래서야 한국 정부가 항상 이야기하는 공여기관 간 사업 중복 방지나 협력을 통한 사업 효과성 제고 등이 가능할까 의문이 든다. 


캄보디아는 전체 인구의 70~80%가 농업에 종사하며 대부분이 톤레삽이나 메콩강 인근의 저지대에 거주하는 탓에 최근 심화된 홍수나 가뭄과 같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 대부분의 선진 공여기관들이 농업을 포함한 정책 전반의 기후변화 주류화에 많은 공을 들이고 사업 중복이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KOICA 사무소나 대사관에선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기후변화까지 커버할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저기서 욕을 좀 먹는 미국 국제개발청(USAID)과 같이 단순히 협력에는 관심이 없고 내 사업만 내 기준에 따라 시행하면 된다는 이유에서 라면 굉장히 실망스러울 것 같다.


기후변화뿐만이 아니다.


한 번은 UNDP 사무소에서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여러 개발 파트너들(Development Partners)을 모아놓고, 향후 3년 간(2016-2018) 대 캄보디아 프로그래밍 전략과 방향을 담은 국가프로그램문서(Country Programme Document) 초안을 발표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도 가졌다. 


유럽연합, 호주 대사관, JICA, 독일 대사관, 스웨덴 국제개발청, USAID, 싱가포르 대사관 등 여러 기관에서 참석을 했는데, 당황스러웠던 건 KOICA에서 네 분이나 참석을 한다고 알려와 원탁의 테이블에 코이카 명패가 4개나 올려져 있었는데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거. 덕분에 그들의 빈자리가 더욱 빛이 났다. 괜히 한국 사람인 나에게 눈총이 쏟아졌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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