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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땅 Apr 30. 2021

캄보디아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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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외국인들과 한데 섞여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1년 정도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던 어느 날, 한 채용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대한민국 정부 지원으로 파견할 UNV 전문봉사단 1기를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JPO는 1차 관문도 넘지 못했었는데 UNV라면 뭔가 새로운 길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어느덧 서른다섯이 넘어버린 나이도 걱정이긴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정말 영영 꿈을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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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O는?


JPO(Junior Professional Officer, 국제기구 초급전문가)는 한국 정부에서 매년 5명 정도의 소수 인원을 선발하여 희망하는 UN 기구에 1~2년간 파견하는 프로그램으로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지구청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관련 정보를 찾아봤거나 응시를 고민한 적이 있을 것이다


파견에 소요되는 비용 전체를 우리 정부가 부담하며, 1~2년 경과 후 해당 UN 기관에서의 경험을 발판으로 해당 UN 기관이 직접 채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 이외에도 다양한 국가에서 JPO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JPO는 국내파들에겐 넘사벽의 존재다. JPO가 운영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토종 국내파 합격자들은 찾기 힘들다. 이는 현재 외교부 국제기구인사센터 내에서 확인 가능한 과거 합격자들의 프로필만 조회해 봐도 확인 가능하다. 혹자는 전부 외교관이나 주재원, 선교사 자녀라기도 하는데 근거는 없다. 


공개된 데이터는 없지만 텝스(TEPS) 성적만으로 합격자를 선정하는 1차 전형의 경우 커트라인이 930이 넘는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건 국내파에겐 불가능한 점수라고 생각한다. 노오력을 하지 않아 그런지 모르겠지만, 글쎄 주변 사례를 보면 넘지 못하는 벽 같은 게 있는 듯한 느낌이다.


JPO시험 제도는 2016년 개편되어 TEPS를 볼 필요 자체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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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V 전문봉사단의 일원으로 캄보디아 UNDP(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 유엔개발계획) 사무소의 Climate Change Knowledge Management Officer (기후변화지식관리담당관)이란 직함을 달고 일을 하게 되었다. 기대카 컸지만 하지만 한 편으론 몇 번의 이직 실패가 있었던 탓에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난 유엔의 정식 직원이 아니다. 그냥 2년 간의 내 시간을 할애해 개도국에서 개발현장을 체험하기 위해 떠나는 1인일 뿐이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내가 기여할 곳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이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다면 의견을 개진하고 추진도 해보겠지만, 그뿐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혹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슬퍼하지 않을 것이며,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 다음은? 천천히 생각하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결과가 따르든 어차피 내가 선택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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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의 나흘이 지났다. 


지난 금요일(8월 1일) 밤에 도착했는데 주말 이틀 동안엔 현지 부동산을 통해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앞으로 살 집을 보러 다녔다. 


지금까지 이 곳에 와서 내가 받은 인상은,


첫째, 덥다. 4~5월이 제일 덥고(40도 육박), 이제 우기가 끝나가며 시원해지고 있다는 데도 덥다. 햇살은 또 어찌나 뜨거운지 조금만 걸어도 살이 타는 것 같다. 그래도 건물 안에 들어오면 시원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습도는 높지 않은 듯하다. 


둘째, 이곳에선 오토바이 뒤 리어카를 연결하고 그 위에 의자를 얹은 듯한 '뚝뚝'이 주요한 교통수단인데 정말 이 놈의 '뚝뚝' 기사들 때문에 죽겠다. 아침에 호텔을 나서면서부터 '헤이, 뚝뚝' 거리는데, 거리 곳곳에 '뚝뚝'을 세워둔 기사들은 나를 보면 다들 '뚝뚝' 거린다. 가볍게 'Walking!' 이라 답하고 웃어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밥을 먹을 때도 저 멀리 '뚝뚝' 기사가 나를 쳐다본다. 밥 먹고 자길 타라고. 


거기다 오토바이 뒤에 타라고 지나가며 '모토, 모토' 하는 놈들까지... 이 놈의 '모토', '뚝뚝' 소릴 꿈속에서 들을까 겁난다. 


셋째,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걸어 다닐 환경은 아닌 듯하다. 뜨거운 햇살도 햇살이거니와 도로가 너무 무질서하다. 인도도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고, 차와 오토바이, 뚝뚝이 혼재돼 차선도 없이 달리는데 정말 위험한 것 같다. 거기다 차량과 오토바이에서 나오는 매연으로 호흡도 어렵다. 세상 살며 이렇게 민감한 적이 없었는데, 여기선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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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4. 첫 출근을 했다.

 

9시경 UNV 현지 직원이 호텔로 픽업을 왔고, 함께 은행으로 이동 후 수당을 받을 계좌를 개설했다. 그리곤 UNV 사무실에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는데, 현지 직원과 나 1:1로 진행되었다. First Aid 키트를 수령하고 일하게 될 사무실 위치를 확인하고 끝이 났는데, 살짝 긴장되고 기대했던 마음은 여기서 끝이었다. 


현지 직원은 점심 맛있게 먹으란 말과 함께 사라졌는데...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첫날 점심부터 혼자 남겨지고 나니 뭔가 허전했다. '같이 점심이라도 먹자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차피 각자 내더라도...' 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내 '그래, 여긴 한국이 아니지?' 하고 잊어버렸다. 매번 이렇게 사람들을 맞이하고 보내는 게 일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더 대박은 오후에 찾아왔다. 


혼자서 식사를 하고 일하게 될 사무실엘 갔는데 이거...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다. '누가 사무실에 들어오면 눈이라도 돌려야 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과 함께 앉아있는 직원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말을 건 두 친구는 얼굴에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고 귀찮게 왜 자기들한테 말을 거냐는 투로 대답을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팀은 아니었다.) 


다음으로 말을 건 친구는 일본인 직원이었는데 다행히 우리 팀이었다. 그 친구 외에는 자리에 아무도 없었는데, 뭔가 바쁘게 하고 있어 내게 양해를 구했다. 괜찮다고 하고, 사무실 중앙에 놓여있는 테이블에 앉아 기다렸는데.. 허라, 그렇게 30분을 보냈다.

  

1시간이 지나서야 나랑 일하게 될 현지인 친구가 왔고, 그 친구를 통해 IT 팀에서 컴퓨터를 셋업해 주었는데... 그 후론 다시 아무 일 없이... 오후 내내 혼자 남겨졌다. 내가 오는 질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나, 이렇게 일찍 올지 몰랐다나?...  


이틀째인 오늘은 그나마 나아 기분은 회복되었지만, 참 실망스러운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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