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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땅 Apr 23. 2021

이직의 연속

1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독일 본에 위치한 UNV(United Nations Volunteers, 유엔자원봉사단) 본부로부터 비행기표와 사전 준비금을 수령했고, 캄보디아 UNV사무소로부터는 비자가 정상적으로 발급되었다는 증명서와 함께 도착 후 필요한 호텔 등 로지스틱스(logistics) 관련 정보를 수령했다.  

 

이제 8월 1일, 비행기만 타면 된다. 



2


군대에 다녀와 국제기구로 방향을 틀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꿈이었다. 


대학을 마치고 국제대학원에 용케 합격하기는 했지만, 적절한(?) 영어 실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입학한 대학원 생활은 스트레스로 다가왔고(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고, 외국인을 비롯 네이티브 수준의 실력자들이 깔렸다) 1학기를 채 마치기도 전에 자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친구의 만류로 자퇴가 아닌 휴학을 했지만, 어쨌든 부적응이 이유였다.

  

바로 사기업에 취업을 하였지만 이상과 너무 다른 현실 때문인지 거기서도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유명 자동차 회사의 관리부서라 페이는 괜찮았지만, 일하면서 느껴야 하는 압박감이나 긴장, 스트레스 때문에 오히려 하루하루가 암울하기만 했다. 


그렇게 회사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6개월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에 돌아와서부터는 왠지 일이 잘 풀렸다. 오랜만에 본 토익에서 만점이 나왔고, KOICA(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한국국제협력단)에서 인턴을 하며 내 주요 관심 분야였던 개발협력(개도국의 경제, 사회적 발전을 지원하는 원조)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 후에는 교환학생도 유엔 관련 국제기구들이 많이 모인 스위스 제네바로 다녀왔고, 석사과정을 마치고는 국제교류 관련 업무를 하는 공공기관에 입사했다. 


그리고 한 동안 국제기구니 개발협력이니 하는 것들을 잊고 살았다. 회사생활도 나름 괜찮았고, 하는 일도 재미있었다. 동년배 직장인들과는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냈고, 회사 밖에서는 스윙이란 소셜 댄스에 빠져 살았다. 뭐하나 부러울 것 없었고, 난생 처음 걱정이란 걸 잊고 살았다.


그러던 차에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이 속속 확정되면서 나는 '인서울'을 외치며 다른 직장을 찾아보게 되었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어느 한 사립 대학의 교직원 자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3


대학으로 자리를 옮길 때만 해도 난 이후의 인생이 꽤나 꼬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대학에서 맡게 된 업무는 총무 파트의 자산관리였다. 쉽게 말해 교내 책걸상이나 컴퓨터 등의 집기에 자산 스티커를 붙여 관리하는 업무였는데, 동기 유발이 될 리가 만무했고 나랑 맞을 리도 없었다. 거기다 대학이란 테두리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문화는 어찌나 경직돼 있고 위계질서는 또 어찌나 심한지 내 인내심은 곧 바닥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 놓이다 보니 자연스레 이직을 후회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예전에 품고 있던 '국제기구 진출'이란 꿈이 다시 떠올랐다. 


너무 일찍 포기해 버린 건 아닐까?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하나? 


고민이 깊어갈수록 그 자리에 하루도 더 있고 싶지가 않았다. 


이런 생각들이 머리 안을 가득 채우자 나는 애당초 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상상도 하지 않았을 자리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이용해 개도국에서 개발협력 사업을 펼쳐보겠다는 한 신생 NGO를 알고 지원하게 되었는데, NGO에선 찾아보기 힘든 연봉 3천을 주겠단 말에 다시 이직을 감행하게 되었다. 신생단체라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그와 함께 나도 빨리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연봉도 깎이고 안정적인 정규직 자리도 때려치워야 했지만 당시엔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런데 이 단체가 여러모로 이상했다. 이사장, 사업부장, 나, 그리고 행정실장이 다였는데, 이사장 본인이 개인적으로 해외여행 가는 걸 보도자료로 만들어 뿌리라고 지시하질 않나, 유명 정치인의 뒤를 봐주고 출판기념회를 열어주질 않나, 동남아 '거지'들한테 신발이나 나눠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라고 하질 않나...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 투성이었다. 나름 개인적인 열정으로 제안한 프로그램도 이사장 본인의 이해득실만을 위한 인력동원 용으로 변질되었고, 본인이 집필하겠다는 책도 대학원 조교들에게 대필을 시켰다. 개인 이메일 계정도 없이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회사 메일 계정을 사용하며 감시 아닌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연이은 이직 실패였다. 꿈이고 뭐고 그간의 인생 자체가 실패인 것처럼 느껴졌다.  



4


또다시 이직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난 다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6개월 만에 입사하게 된 곳이 바로 한 개발협력 컨설팅 회사.  


새로 옮긴 회사에선 컨설팅 회사답게 정말 바쁘게 살았다. KOICA에서도 처음 시도하는 사업 형성 조사 프로젝트를 2건(미얀마, 인도네시아)이나 수주하여 수행하게 되었고, KDI(Korea Development Institute, 한국개발연구원)의 KSP(Knowledge Sharing Program, 지식공유프로그램) 사업도 2건(파키스탄, 페루)을 더 수행하였다. 제안서 작성부터 전문가 확보, 해외출장에 보고서 작성까지 4개의 사업이 동시에 돌아가다 보니 1년이란 시간이 정말 쏜살 같이 지나갔다.


무엇보다 자신감 회복이 가장 컸다. 사실 그간 방황 아닌 방황을 하며 가족이나 친구들 보기 창피해 일부러 자리를 회피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예전의 활기찬 모습도 되찾았다. 거기다 일도 재미있었다. 직접 개도국 현지로 날아가 여러 이해관계자들과의 미팅을 통해 현지에 맞는 수요(needs)를 파악하고, 우리나라의 새 국별협력전략(Country Partnership Strategy, CPS)에 따라 KOICA의 향후 사업을 제안해주는 프로젝트는 사업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자신감을 회복하자 금세 나는 또 다른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각계 전문가를 ‘모시고’ 사업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언제까지나 사업관리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꾸 이직을 하다 보니 잡서치가 이제는 생활화된 상태였는데 어느 날 하나의 채용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시 유치로 한국에 새로 개소한 환경 분야 도시 간 국제단체 이클레이(ICLEI - Local Governments for Sustinability)의 동아시아사무소였는데, 바로 이거다 싶었다.


대학시절 중국 내 사막화 방지를 위한 식목활동 참여를 계기로 국제 환경 이슈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었고, 2016년 이후 MDG(Millenium Development Goals, 새천년개발목표)를 대체할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가능 개발 목표) 논의에 있어서도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기후변화가 주요하게 다뤄질 것이기 때문에 전망도 밝아 보였다. 거기다 국내에도 GGGI(Global Green Growth Institute,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뿐만 아니라 GCF(Green Climate Fund, 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이 유치되는 등 환경 분야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던 터라, 장기적으로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 이직을 하게 되었다. 



5


이클레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의 도시들은 온실가스 감축이나 기후변화 적응(adaptation)을 위한 여러 가지 이니셔티브(initiative)나 정책들을 시행해 왔다. 이클레이는 92년 브라질에서 개최된 지구 정상회의에서 지방의제 21(Local Agenda 21)를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현재까지 전 세계 1,000여 개 도시 및 지방정부와 함께 지난 지속적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예를 들어, 이클레이는 UNFCCC(UN 기후변화협약)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국가의 당사국 회의(COP)에 맞춰 지속적으로 Local Government Climate Roadmap (지방정부 기후로드맵)이란 활동을 전개하여 2010년 멕시코에서 개최된 16차 당사국회의(COP16)에서 국제사회가 지방정부를 정부 이해관계자(government stakeholders)의 하나로 인정하게 만드는 게 큰 기여를 하였으며, carbon Cities Climate Regitry (cCCR)과 같이 MRV(measurable, reportable and verifiable) 기준에 맞춰 도시나 지자체가 온실가스 감축 관련된 활동이나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도구(tool)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에서 거주하는 인구(urban population) 비율이 2011년을 기해 50%를 넘어섰고, 도시로 분류되는 지역이 세계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70%를 소비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0%를 발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을 UN 도시 및 기후변화에 관한 특사(Special Envoy for Cities and Climate Change)로 임명한 바 있고, 2014년 개최된 UN 기후정상회의(Climate Submit)에선 회의에 참여한 여러 도시들이 함께 시장협약(Compact of Mayors)을 체결, 전 지구적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2015년 채택된 UN의 지속가능 개발 목표(SDG) 또한 17개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지속가능한 도시와 인간정주지(Sustainable Cities and Human Settlements)'를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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