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막 저녁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묻는다.
"아빠, 내일 저녁 뭐야?"
살짝 기대에 찬 목소리. 하지만 내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 퉁명스럽다.
"아빠가, 내일 저녁 뭔지 묻지 말랬지?"
살짝 날이 서 있다고 해야 하나? 내일은 나름 일주일 중 하루를 정해 우리 가족이 떡볶이나 라면, 치킨 같은 특식을 먹는 날. 아이는 아마 기대에 차 물었을 텐데, 난 내일 저녁 메뉴를 지금 생각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집에서 도맡아 요리를 한 지도 어느덧 3년이 넘었고 이제 제법 요리도 익숙해져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난 요리가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드시 치러내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느낌이랄까?
아이가 같은 질문을 할 때마다 어린 시절 나 또한 엄마를 매번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었던 아닌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2
아내가 김치볶음밥을 먹으려다 말고 한 마디 한다.
"소시지 안 넣었네?"
안 그래도 소시지를 넣을까 말까 망설이긴 했는데, 한 술 뜨기도 전에 이렇게 나올지 몰랐다. 안 그래도 피곤하고 지쳐 보이는 오늘. 평소 같았으면 쏘아붙였을 것 같은데 이번엔 한 발 물러선다.
"어묵국도 있고 계란 프라이도 해서 안 넣었어."
답을 하면서도 뭔가 느낌이 궁색하다.
아침은 원두커피 한 잔, 점심은 대충 곡물 셰이크로 때우는 아내에게 저녁식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고기'를 잘 활용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내가 잘못한 것 같다. 조용히 일어나 전기레인지로 다가가 추가로 계란 프라이를 하나 더 만들어 고이 김치볶음밥에 올려준다.
미안해, 여보.
3
아내가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저녁식사 자리가 불편하다. 정성 들여 요리를 하고 아내가 퇴근하기를 기다려 다 같이 함께하는 저녁식사. 하지만 이럴 때면 아내는 말이 없다. 묵묵히 수저만 들뿐. 말이 많은 나도 이 때는 말수를 줄인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아내는 조용히 소파로 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나는 조용히 설거지를 시작한다.
아, 눈칫밥 먹기 힘들다.
외벌이집 집순이 아내들 또한 같은 마음이겠지?
아내가 힘들어 보이면 맛있는 걸 하나라도 더 주고 싶다. 닭다리도 하나 더 뜯어주고 싶고. 그러면서 속으로 응원한다. 힘들었지? 이거 먹고 힘내.
4
요리를 하면서 내가 가장 기쁠 때는?
바로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아내와 아이가 '와, 맛있어!'하고 반응해 주는 것!
내가 만든 된장찌개며 찜닭, 칼국수 등이 밖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다며 '이런 건 외식으로 하면 안 돼!'라고 해줄 때마다 힘이 나고, 요리한 보람을 느낀다. 반대로 그러한 반응이 없을 땐 '왜 반응이 없지?'란 생각에 기운이 나질 않고.
요리를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나를 돌이켜보게 된다. 아내가 차려주던 음식을 먹을 때, 그리고 그전에 어머니가 차려주던 음식을 먹을 때. 과연 나는 얼마나 그 음식에 감사해하고, 맛있다고 표현해 주었나?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미안하고 또 죄송하다.
5
"소금을 좀 더 넣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
"좀 더 바삭하게 익혀주면 좋은데..."
요리를 입에도 대기 전에 아내가 이런 말을 할 때면 기운이 쑥 빠진다. 가끔은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열심히 만들었는데...'란 생각에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아내가 요리를 하던 시절에 나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 기억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말을 들으면 더 서운하고, 들을 때마다 서운하다.
남편들아, 평화로운 가정을 원한다면 아내가 해 준 음식에 토 달지 마시라.
(그나저나 우리 아내는 요리도 해 본 사람이 왜 그러는 걸까?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