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지 1년이나 되었을까. 바삐 돌아가는 세상 속에 ‘환경보호’ 라는 현수막 문구 마냥 이제는 식상해진 단어. 그렇다고 그 사람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과도한 책임감과 성실감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맏딸. 멀리서 찾지 말자, 바로 여기 있으니까. 맏이라는 자리는 동생들을 돌볼 책임을 동반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뭐든 잘 해야 했다. 왜? 동생들에게 말발이 먹혀야 되니까. 힘든 내색 따위는 좋은 결과가 나오고 나서나 할 수 있는 생색이었다. 그렇게 진짜 ‘나’를 잃고 ‘잘하는 나’만 남았다.
생애 첫 직장, 그 뿌듯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따끈따끈한 ‘신입’ 타이틀은 선배들의 등 뒤에서 차근차근 업무를 배울 시간을 벌어 주었다. 업무스킬이 쌓이니 이런저런 어려운 과제를 맡아 새벽까지 야근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만큼 자기 몫을 해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곧 누구나 겪는 워킹맘의 로드맵을 밟아갔다. 결혼과 출산을 겪는 동안 회사는 생존을 위해 달리고 있었고, 아이를 안고 있는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회사에서는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묻느라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집에서는 우는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느라 떡이 되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업무도, 육아도 무엇 하나 잘 해내지 못하는 ‘나’를 마주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