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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Dec 07. 2022

나는 나를 무조건 사랑한다

feat. 자기사랑 실천표


 “나는... 나는 나를 무조건 사랑한다.”


 이른 아침 겨우 뜬 눈으로 거울과 나누는 어색한 첫 마디.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서서 중얼거리고 있으면 남편은 어김없이 소리쳤다. “나 불렀어? 휴지 갖다 줘?” 그럼 나는 조금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눈이 좀 부었다’ 그러고 있었어.” 남편이 거기에 미운 한마디를 보탰다. “하루 이틀 일인가.” 내 눈이 유난히 부어있긴 하다. 여기에 잠들기 직전 울기라도 한 다음 날에는 속이 꽉 찬 모닝빵 두 개가 붙어있다. 아침을 먹지 않아도 퉁퉁한 눈두덩이만 보면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사랑한다고 말하다니. 심지어 이 말 한마디에 내가 좀 예뻐 보이기까지 한다. 누가 보면 ‘미’ 아니, 그보다 높은 ‘솔’쯤 쳤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처음부터 잘 된 건 아니었다. 퇴근 버스를 탈 때가 되서야 ‘아차!’ 하는 날이 더 많았다. 아이들 숙제를 봐주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면 뒤늦게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렇게라도 하면 그나마 아이 앞에서 치켜 올라간 눈썹이 조금은 누그러지곤 했다. 하지만 이건 나를 진정 사랑한다기보다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기 위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이대로 내 연차와 맞바꾼 강의를 날리고 싶지 않았다. 나를 마주하는 일을 게을리 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더 사랑해주고 보듬어주고 싶었다. 어렵지 않게 나의 삶의 일부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는데 무언가 거치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커피 쿠폰이었다.     



(그림출처 : 에바 알머슨)


 그렇게 탄생한 실천표. 지갑 속 신분증 자리에 끼워두거나 내 휴대폰 배경화면도 좋다.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끼니 후 딱 다섯 번만 내 안에 모자란 사랑을 채워준다. 알람을 힘겹게 끄는 이불 속, 운 좋게 혼자 탄 출근 길 엘리베이터 안, 화장실에 아무도 없음을 알아챘을 때, 업무를 하며 중간 중간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잠재울 때, 퇴근 길 현관문을 열기 전, 잠들기 전 양치하며.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나를 사랑해준다. 양손으로 내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면 효과는 배가 된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 수년 전 부모 배움터를 먼저 들었던 선배맘의 후기만큼의 변화를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하루 10번 이상을 채우는 날이 쌓여갈 수록 조금씩 변화를 볼 수 있다는 선배맘의 확신에 의심 대신 꾸준히 실천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다. 남편에게 예쁜 말 한마디 더 나간다. 아이의 작은 실수에 크게 화내는 대신 부드럽게 감싸주는 말을 건넨다. 무엇보다 머뭇거리는 대신 속으로 ‘이까짓 거!’라고 외치는 일이 많아진다.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알아서 내 안에 사랑탱크를 채우는 한 마디가 더 나간다.      


저녁 설거지를 하고 거실소파에 반쯤 누운 듯 앉아있는데 아이가 물었다.      


“엄마, 오늘도 그거 했어?”

“뭐?”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거.”

“아, 아침에 한번 밖에 안한 것 같은데. 너는 했어?”

“나 방금 하고 왔어.”

“엄마도 생각난 김에 지금 해야겠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아차, ‘무조건’이 빠졌네. 다시, 다시. 나는 나를 무.조.건. 사랑한다. 너희도 ‘무조건’ 꼭 붙여야한다.”

“왜?”

“‘무조건 사랑한다’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뜻이니까.”

“아~! 엄마, 아빠가 우리 사랑하는 것처럼?”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했다. 그렇게 자라는 아이를 보고 나도 한 번 더 속삭인다.

“나는 나를 무조건 사랑한다.”


그렇게 나를 더 자주, 더 많이 사랑하고 싶어졌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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