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무색하게 더위는 더욱 기승이다. 여름의 문을 아직 완전히 닫지는 못하고 반쯤 열어둔 상태에서 빼꼼히 가을의 문을 열어본 격이랄까.아침저녁으로 약간의 선선함이 스치기는 했지만 정말 스친 것이 다였다.
드디어 개학.
벌써 5번째 방학을 맞은 터라 유난히 짧았던 여름방학은 그런대로 지낼만하다는 거만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심 지쳤는지 개학 이후 아침부터 아이에게 좋은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아이도 간만의 학교 생활에 스트레스받았는지 예민함이 극에 달했다. 하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데 엄마의 말부터 곱지 않았다. 오는 말에는 기대를 말았어야지. 그래, 나부터 잘하자 싶어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집을 비우기로 했다.
구석구석 박아둔 제습제가 불러온 배를 꿀렁거렸다. 작아질 듯 딱 맞던 아이의 옷과 양말도 이제는 확연히 작아져버렸다. 소꿉놀이로 갖고 놀던 가방도 옷장 속 어디 있는지 모를 것이 뻔했다.
집정리 작업복으로 입고 있던 남편의 반팔티는 어느새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땀으로 젖어있었다. 버릴 것을 쌓고 남길 것을 가지런히 놓아두던 그때, 헐렁한 티셔츠 사이로 차가운 것이 나를 간질였다. 어차피 땀이 날 것이 뻔하니 처음부터 켜지 않은 선풍기였다. 시원하다 못해 섬뜩하여 돌아보았다.
아직 8월인데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이리 시원하다니. 정리하던 옷가지를 던져두고 달력을 넘기니 "그날"이었다. 무더위와 씨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저 8월만 가라 마음을 되뇌었는데 문득 돌아보니 그날, "처서"였다. 이제는 정말 가을의 문턱을 넘어 문틈으로 몸을 넣으려는 순간에 들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