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 옆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답지 않은 위로의 말을 건냈다가 오히려 더 큰 원망의 말이 화살처럼 꽂힐 것 같았다. 여덟살의 나이에 내가 쌓은 벽돌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란 어떤 걸까.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 서럽게 흐느끼는 소리 속에서 감히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초등학교 3학년, 친구들이 학교에 천 원 한 장씩 가지고 오는 것이 부러웠다. 용돈을 받은 아이들은 엄마에게 먹을 것을 들어보이며 "이거 먹어도 되요?" 혹은 "이거 사주세요." 라고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사먹을 수 있었다. 용돈은 일종의 "작은 독립"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어느날, 저녁밥상을 물리고 아빠와 엄마를 다시 앉혀두었다.
"아빠, 나 할 말 있는데 듣고 절대 혼내지 않는다고 약속해! 엄마도! 안되면 그냥 안된다고 말해줘."
"무슨 이야기인데 그래? 말해봐."
"빨리 약속부터 해!"
"알았어.약속할게."
"나... 용돈받고 싶어요. 친구들도 받고, 나 하교길에 간식도 사먹고 싶고..."
"그래, 얼마면 되겠니?"
"정말?? 되요?? 아싸!!! 음...음... 일주일에 3천원!"
"그래, 대신 허튼데 쓰지 않고 어디에 썼는지 엄마에게 말씀드려라. 참고서는 엄마, 아빠가 사주더라도 그 외에 필요한 것들은 너의 용돈으로 해결하도록 해."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용돈이라는 것을 받아보았다. 엄마는 용돈을 넣어다닐 지갑도 함께 선물로 주셨다. 귀여운 여자아이가 수 놓아진 예쁜 손지갑이었다.
대략 이런 느낌의 소녀가 수 놓아진 지갑이었다.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는 쫀드기를 마음껏 구워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등교길마저 즐거웠다. 등교를 해야 하교를 하고 하교를 해야 쫀드기를 사먹을 수 있었다. 당시 쫀드기는 대표 불량식품 중 하나로 양껏 먹어도 500원이면 충분했다. 쫀드기 사먹을 돈을 재쳐두고 남은 돈을 모으면 다른 문구류도 살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나왔다. 어린 나이에 돈의 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론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돈을 갖고 있자니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았다.
'혹시나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하교길에 돈을 빼앗는 나쁜 선배들이 있다는데 내 것도 빼앗아가면 어쩌지? 괜히 한꺼번에 다 들고 왔나?'
시간이 흘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더 이상 지갑 속 용돈에게 쉬는 시간마다 안부를 묻지 않았다. 심지어 쫀드기를 계산할 때 마다 일일히 가방을 벗어 속주머니를 열어보는 것이 귀찮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지갑의 자리는 가방의 가장 깊숙한 속주머니에서 가방 앞주머니로, 가방 앞주머니에서 실내화 가방 앞주머니로 옮겨갔다. 나의 실내화 앞주머니는 지퍼가 아닌 작은 찍찍이로 여닫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손만 쑥 집어넣으면 지갑을 바로 꺼낼 수 있는 아주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니까 보관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꺼내기 좋은 장소라는 뜻이다.
그날따라 학교를 마치고 뭐가 그리 좋았는지 실내화 주머니를 신나게 돌리며 집에 갔다. 엄마에게 빨리 좋은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나보다. 쫀드기 구워먹기도 거르고 집으로 곧장 달렸다. 하늘 높이 실내화 가방을 날려보기도 했다. 집에 도착해서 룰루랄라 지갑을 학원 가방에 옮겨두려고 실내화 가방 앞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찍찍이를 뜯어 얼굴을 쑤셔 넣었다. 없었다. 실내화 가방을 보라색이었는데 그 안에 빨간색 물건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이제는 식은 땀이 났다. 거짓말을 좀 보태서 손도 좀 떨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대충 얼버부리고는 하교 길을 다시 돌아갔다. 평소 가장 빠른 길로 뛰다시피 걸어갔던 길을 지그재그로 샅샅이 뒤져가며 걸었다. 그날따라하교 길은 쓰레기 하나 없이 유난히 깨끗했다.
시작은 쫀드기였다. 하지만 돈이 쌓여갈 수록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겼다.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다시 나의 시점은 현재로 돌아왔다.
다시 고개를 돌려 우는 아이를 보았다. 우리가 사랑했던 독서노트, 나의 빨간 지갑 그리고 어린 나이에 애써 차곡차곡 쌓아가던 것을 잃어버린 경험들이 내 안에서 시끄럽게 소용돌이쳤다. 물론, 200권 가까이 되는 책을 읽고 기록해 온 내 아이의 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쩌면 아이의 노트도 나의 빨간 지갑처럼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