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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틈 Oct 22. 2024

엄마, 비 오는데 데리러 와주세요.

같은 비, 다른 추억.


바쁜 아침 시간, 날씨 예보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 말어?'




일기예보 보다 할머니 무릎이 더 정확하던 시절,

아침에 구름 한 점 없이 쨍쨍한 날이었다.

하지만 하교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갑자기 새까매진 하늘과

속절없이 쏟아지는 빗줄기 앞에서

나는 섣불리 집까지 뛰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집에 갈까.

옆을 보았다.

이미 신이 나서 빗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현관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

미리 예비 우산을 챙겨 와 당당하게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


그때 나의 레이더 망에 딱 잡힌 누군가가 있었다.

우산을 하나 더 챙겨서 학교로 달려오는 어른 몇이었다.

그 속에 우리 엄마도 있으리라!

평소에 그렇게 엄하셔도 이런 날 그냥 오라고 할 정도로 매정한 분은 아니지!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고이 마음속에 접어두었다.

할 수 없이 실내화 주머니를 머리 위에 얹었다.

'뛰자!'




아이가 7살 때 그림책을 읽으며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던 적이 있었다.

저벅저벅 똑똑

젖은 운동화에서 나는 소리를 음악 삼아

손 끝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발자국 삼아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갔던 그날 이야기.


<이까짓 거!> 박현주 / 교보문고



"엄마는 할머니한테 서운하지 않았어?"

"처음에는 서운했는데 막상 집에서

할머니가 젖은 옷 받아서 빨아주고

핫초코도 타주고 하니 그런 마음이 사라졌어.

비에 흠뻑 젖어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았다 싶고."

"난 빗 속에서 노는 것 좋아해!

나 학교 다니게 되면 엄마도 안 와도 돼!"


그랬던 아이가 하교 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전화가 왔다.

"엄마, 비 오는데 나 좀 데리러 와주면 안 돼요?"

(이럴 때는 존댓말이 저절로 나오나 보다.)

"그렇게 많이 오는 것도 아닌데

5분 거리 학원을 데려다주느라

엄마가 지금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네가 알아서 한 번 가봐."

"힝, 너무 해!"

이내 뚝 끊어버리는 아이.


그날 이후부터 아이들은 예비 우산을 꼭 챙긴다.

나처럼 비에 흠뻑 젖은 경험은 없지만

예상치 못한 비가 내리는 날이면

5~6명의 친구들이 좁은 우산 속에 꼭 끼어

학원을 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선심 쓰듯 말하는 아이의 표정이 밝다.


같은 하늘 아래 내리는 빗 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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