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틈 Oct 21. 2024

엄마, 오늘은 혼자 걸어갈래요.

아이와 독립하는 "나" 응원하기


"엄마, 나 이제 학교 혼자 갈래요."


바쁜 아침, 등교준비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간에

벼락을 맞은 듯했다.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럼 그럼. 혼자 걸어가면 가다

친구도 만나고 더 재미있을 거야."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엘리베이터 1층까지

바래다주고 집으로 올라왔다.

아이 등교시키기 일정이 빠진 오전시간.

나는 무얼 하면 좋을까.


 



등굣길은 우리에게 아주 짧은 산책길이었다.

손잡고 걸으며 동요를 부르기도 하고

받아쓰기 시험을 걱정하는 아이들의

푸념을 들어주기도 했다.

물론 "그러니까 연습을 더 하자고 했잖아."

라는 말을 참느라 애를 먹기는 했지만.

구구단을 외고 서로 문제를 맞히며 걷기도 했다.

첫째가 7단과 8단을 어려워해 벌써

몇 차례 재시험을 거듭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하지만 며칠의 등굣길을 함께 하니

어느새 막내도 누나와 함께 구구단을 외우고 있었다.

저 멀리 횡단보도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면

거리야 얼마나 되 냅다 뛰고 보는 우리다.  


아이들을 등교시키며 걷는 길은

나에게 걷기 운동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학교 쪽문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나는 세차게 팔을 흔들며 파워 워킹을 시작했다.

동네를 산책하듯 크게 한 바퀴 돌면

어느새 4000보는 거뜬히 넘기고 있었다.

집과 학교 사이 너른 빈 땅에 아파트와 상가가

하나 둘 새로 생기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어느 날은 장 보는 날이 되기도 했다.

집 근처 식자재 마트는 꽤 이른 시간에도 오픈한다.

전날 미리 장 볼거리를 적어서 등굣길에 나서면

따로 장 보러 나가도 되지 않았다.

아침 빈 속에 나와 장을 보는 것은

좀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퇴사 후 집에만 콕 박혀 있을 수도 있었다.

하루종일 잠옷 차림으로 집안을

배회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루만 더 데려다 달라며

내 팔을 잡아 끄는 아이들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어쩌면 아이들과 함께 한 등굣길이

나를 부지런하게 하는 구원의 손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두 발 자전거를 탈 때는 부모가

꼭 잡아주고 함께 달려가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부모가 손을 뗀지도 모르고

자전거를 쌩쌩 밟아 나간다.  

내 아이들도 조용히 자기만의 속도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나도 조심스럽게 아이의 자전거를

놓아줄 때가 되었음을 감지했다.



그렇게 아이들끼리 등교한 지

1년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아직도 아이들과 함께 등굣길에 나서지만

우리는 아파트 입구에서 헤어진다.

아이들은 학교로, 나는 헬스장으로.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고 돌아서다

다시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조금씩 독립하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이와 독립하는 "나"를 응원한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무료이미지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속옷 사이즈 뭐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