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글씨는 인용문입니다.)
우리는 3장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웠습니다. 하나는 1914년 1차 대전 이전까지 시온주의를 믿는 유대인은 거의 없었다는 점(1% 내외), 다른 하나는 민족주의에서 출발한 시온주의가 식민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는 까닭은 유대인의 인성적 결함 때문이 아니라 시온주의자들이 전형적인 유럽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후자는 분쟁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특히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건국의 최대 공로자는 유대인이 아니라, 시온주의에서 이익을 추구한 '유럽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뉘며 저마다의 이유로 시온주의를 지지했습니다. 첫째는 시온주의자들로, 유대 민족의 생명을 보호하고 문화 발전을 도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기독교 메시아주의자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가 재림해 천 년간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는 구절(계 20:1-6)이 있고, 이를 근거로 유럽에서는 천년왕국설이라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천년왕국설은 예수의 기독교 왕국이 출현하기에 앞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해 부흥하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래서 계시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장려했습니다. 특히 19세기에 영국의 성공회교도들(Anglicans) 사이에서 천년왕국설이 유행하게 되면서 시온주의를 후원하게 됩니다.
마지막은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정책결정자들로, 아랍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터전을 만들고 아랍 민족을 약체화시켜 국익을 증대하려는 목적에서 시온주의를 지지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영국의 로이드 조지 수상이나 밸포어 외교부장관처럼 천년왕국설의 신봉자도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이들이 시온주의를 후원한 이유를 주로 종교에서 찾았으나, 1970-80년대 이후의 학자들은 정치적 동기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처럼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유대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외국 서적을 보시면 비유대인 시온주의자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를 유대인 시온주의자와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친시온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제4장에서는 세 번째 유형의 친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어떻게 분쟁을 야기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1차 세계대전 중인 1917-18년에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정복한 후 독립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강제로 지배했다.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로 만들어 수탈하려는 목적은 아니고 중동에 가진 전략적 자산을 지키는 군사 기지로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영국의 지배를 식민주의가 아니라 제국주의로 분류한다. 그런데도 식민 지배를 거론한 까닭은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기 위해 활용한 수법이 유대인의 식민화였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스콧 아트란(Scott Atran)은 이를 ‘대리 식민주의’(surrogate colonialism)라고 명명했다.
영국의 대리 식민주의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적 속성의 혼합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에서 분쟁의 무대를 만들어냈다. 식민주의적 도구로 선택된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의 땅으로 바꾸길 원했다. 그러나 이는 아랍인의 저항을 야기했기 때문에 정치적 안정을 바라는 제국주의적 이해에 부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영국은 공정한 조정자를 자처하며 때로는 아랍인을, 때로는 시온주의자의 손을 들어주며 정치적 균형을 이루려 했다. 그 결과로 양자는 마치 투우장에 오른 소처럼 집단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서 끊임없이 투쟁해야만 했고, 필연적으로 분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1948년에 이르면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분쟁은 고착화된다.
자, 그럼 이제 목차를 한번 볼까요?
1절 : 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시기 : 1914-1919년(1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
주제 :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기 위해 시온주의를 후원하는 영국
핵심내용
아랍 지역과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약속한 영국(후세인-맥마흔 서신협상 등)
밸포어 선언의 배경과 의미
아랍 민족주의의 열망 (킹-크레인 위원회의 조사)
2절 : 외로운 투쟁의 시작
시기 : 1920-1923년 (첫 번째 소요 ~ 영국의 위임통치 확정)
주제 : 소요의 발생 원인과 영국 통치의 정당성 논쟁
핵심내용
영국 정부의 위원회가 판단한 소요의 원인
위임통치의 정당성에 대한 처칠과 팔레스타인 아랍 대표단의 논쟁
3절 : 실패로 끝난 영국의 실험
시기 : 1923-1930년 (세 번째 소요 ~ 맥도날드 서한)
주제 : 아랍 농촌 공동체의 몰락에 대한 영국과 시온주의의 책임
핵심내용
시온주의의 식민화가 초래한 변화
영국 정부의 위원회가 판단한 서쪽벽 소요의 원인
제4장의 백미는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주민들의 소리를 듣고 현황을 분석한 5개 정부 위원회의 보고서입니다.
1. 1919년, 미국의 킹-크레인 위원회 : 아랍 주민들이 독립을 원하는지를 조사함.
2. 1920년, 영국의 팔린 위원회 : 나비 무사 소요의 원인 분석
3. 1921년, 영국의 헤이크래프트 위원회 : 야파 소요의 원인 분석
4. 1930년, 영국의 셔 위원회 : 서쪽벽 소요의 원인 분석
5. 1930년, 영국의 홉 심슨 위원회 : 시온주의자들의 식민화가 농촌 공동체에 끼친 영향
이중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소요의 원인을 분석한 영국의 위원회들(2, 3, 4번)입니다. 아랍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유대인들을 죽였는데도 이들은 아랍인에게서 책임을 찾지 않았습니다. 팔린 위원회와 헤이크래프트는 영국의 잘못과 더불어 시온주의자들의 책임을 크게 추궁했고, 셔 위원회는 반대로 영국의 잘못을 더 크게 추궁했습니다.
정부에서 설립한 위원회가 정부를 비판한다는 게 우리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요? 저는 이게 세계 최대의 식민지를 거느린 영국의 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늬만 민주주의인 사회라서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그에 위배되는 사실은 무조건 숨기려고만 하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더군요. 위원회들이 정부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던 것은 결코 아니지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고, 셔 위원회의 경우에는 실제로 식민부가 정책을 재고하게끔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각 위원회의 보고서는 50여 페이지에서 200페이지에 이릅니다. 100년도 전에 쓰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군더더기 없이 잘 짜인 글입니다. 제가 KOICA에서 일하면서 많은 보고서를 봐왔지만 국내 협력기관들이 작성한 보고서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납니다. 솔직히 부럽더군요. 사회가 발전하려면 이렇게 기본 소양이 갖춰져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기초가 없이 성장한 사회라 책이든 보고서든 뭘 보면 논리적 사고가 결여된 걸 빈번하게 발견합니다. 영국의 뒷꽁무니라도 따라잡으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감도 안 잡힙니다.
그런데 이토록 민주주의와 기본 소양이 잘 갖춰진 영국은 어째서 팔레스타인에서 분쟁을 일으켰을까요? 그리고 왜 1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죄를 하지 않을까요? 시온주의자들의 경우와 똑같습니다. 한 세기 전 대다수의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비유럽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고,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 아랍인을 희생시키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은폐되고 왜곡됨에 따라 오늘날에도 국민들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습니다. 관심도 없고요. 자국의 잘못을 부인하려는 습성은 일본인만이 아니라 유대인, 미국인, 영국인, 그리고 한국인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입니다. 인류가 진정으로 평화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넘어서야만 합니다.
영국 정부는 유대인의 이주와 식민화가 토착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유대 국가로 이어질 일은 없다고 아랍인들에게 약속하고 또 약속했었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사죄를 표하지 않았다. 한 지역의 공동체를 모조리 붕괴시키고 수많은 주민을 사지로 몰고 간 역사는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당시 그 지역을 다스린 정부가 책임이 없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심지어 토착민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지배하고, 우려와 경고를 무시하고 시온주의라는 재앙을 이식하기로 직접 결정을 내린 외세의 정부가 어떻게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4장에서는 1차 대전이 시작된 1914년부터 1930년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며 영국이 분쟁에 대한 직접적이고 중요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영국의 팔레스타인 지배가 정당했는지, 시온주의를 지지한 이유는 무엇이며 실제로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 그로 인해 팔레스타인에서 어떤 변화가 생겨났는지를 알아본다.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시리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영국 국민들이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배우고 자국의 잘못을 반성하는 날이 오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날이 와야지만 이스라엘의 유대인들도 진실을 들여다볼 필요성과 용기를 낼 수 있을 테니까요. 다음주부터 본문을 살펴보며 영국의 책임을 검증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