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환빈 Jan 24. 2024

해제| 여는 글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를 출간한 지 벌써 반년이 되어 갑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책을 읽어주셔서 놀랍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8년 동안 전업으로 쓴 글이니만큼 감회가 남다릅니다.


우수출판콘텐츠를 수상하고 '국내 최고의 팔레스타인 역사서'라는 타이틀을 당당히 내건 만큼 이 책은 전문적인 내용을 다수 포함한 준학술서적입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부담스러워할 꺼라 생각했는데, 반년 만에 700권을 판매하고, 공공도서관 및 중고등학교, 대학교 도서관 3백여 곳에서 소장 중입니다.

추가 : 서울국제도서전에서 '2024년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으로 선정되고 6월 27일에 강연을 합니다.


이토록 고무적인 성과가 정말로 기쁘지만, 일반 독자 분들이 정말로 책을 끝까지 읽으실 수 있으실까 하는 걱정이 큽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정치 분야 서적으로 '정의란 무엇인가'가 유명하지요. 그런데 주변에 책을 산 사람은 많아도 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더군요.


중요한 건 책이 팔리는 게 아니라 읽히는 거니까, 내용 이해를 도울 <독서가이드(해제)>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크게 요약과 핵심 내용에 대한 추가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으시 궁금 점이 있으면 해당 편에 댓글을 달아서 질문을 하실 수도 있고, 다른 독자 분과도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우선은 가볍게 여는 글(머리말)부터 들어갑니다. 여는 글은 딱히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으니 전문을 올리고 그냥 이런저런 하고 싶었던 말을 남겨봅니다. 검은 글씨는 첨언, 파란 글씨는 인용문입니다.



*저자는 2012년 11월에서 2015년 7월까지 KOICA 팔레스타인 사무소에서 근무했고, 처음 1년은 인턴으로, 이후 1년 8개월은 행정원으로 프로젝트 사업을 담당했다. 근무 기간과 그 이후를 포함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각각 1년 반을 살았다.


- 머리말은 집필 1년 차에 겪은 흥미로운 일화로 시작합니다.


2016년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머리를 싸매며 집필에 매진하던 중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 팔레스타인 사무소에서 함께 근무한 현지 직원이자 친구인 오다이가 본부에서 열리는 업무 연수를 받으러 온 것이다. 주말에는 교육 일정이 없다기에 일요일에 서울 관광을 시켜주기로 약속했다. 어디를 데려가면 좋을까 고민하다 그냥 무난하게 코엑스와 남산타워를 구경했다. 아쉽게도 오다이가 많이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저녁에는 명동을 갔는데 다행히 거기서 처음으로 흥미를 보인 게 있었다. 궁중다과로 알려진 꿀타래였다.(실제로는 1990년대에 해외에서 들여온 음식이라고 한다.) 20대 청년 사장님은 오다이를 위해 새 가닥을 집어 들곤 처음부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셨다. 두 가닥이 순식간에 1만 6천 가닥으로 꼬아지는 걸 보니 절로 탄성이 나왔다.


한창 집중하고 있을 때 외국인 두 명이 옆에 다가와 섰다. 귀에 뭔가 익숙한 언어가 들려왔지만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꿀타래가 완성되고 나서 정신을 차리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옆에서 들리던 말이 히브리어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나 유대인들이었다중동과 머나먼 우리나라에서 바로 양옆에 팔레스타인 사람과 유대인이 함께 서 있다니. 세상에 이런 우연이 얼마나 있을까.


- 이때 머릿속에 "그래, 이거야! 이걸로 머리말을 쓰면 되겠어"라는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더군다나 당시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간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어 서안지구에서 10여 년 만에 최대 규모의 폭력사태가 일어나던 무렵이었다. 그래서 이 기묘한 조우에 더더욱 관심이 동해 집중해서 관찰했다. 잠시 후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오다이는 태연했고 유대인들은 흠칫 놀라 움찔거렸다. 오다이가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것까지 알 리는 없으니 단지 아랍인이라는 것만으로도 경계한 것이다.


우리는 꿀타래를 하나 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유대인들과 충분히 멀어졌을 무렵 짓궂은 농담을 던졌다. 팔레스타인 사람이란 걸 밝혔으면 무서워서 떠는 걸 봤을 텐데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그러자 그는 실없이 웃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저들도 평화롭게 온 거고 나도 평화롭게 있으니 구태여 간섭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라고 대답했다.


- 예상대로의 (머리말에 쓰기 좋은) 대답이라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속으로 엄청 웃었죠 ㅎㅎ


지난 3년간 팔레스타인인들과 함께 생활한 덕분에 오다이만이 아니라 거의 모두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는 이슈가 될 만한 ‘테러’만 집중적으로 보도하다 보니 그들을 직접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은 왜곡된 인식을 가지기 마련이다.


언론이나 책에서 접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이스라엘 군인들을 향해 돌이나 화염병을 던지고,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무너진 집에서 절망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도 ‘테러’, ‘자살폭탄’, ‘미사일 폭격’, ‘가자지구 전쟁’, ‘하마스’ 등 분쟁과 연관된 것들이다.


우리의 인식 속에서 팔레스타인은 분쟁이란 이름의 베일을 쓰고 있다. 모든 담론이 분쟁으로만 함몰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고 정치적 사안이 전부인 것처럼 간주된다. 가령 2011년에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팔레스타인과 무역하기에 가장 좋은 나라 중 하나로 한국을 손꼽았지만 어떤 언론도 이런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매년 1-3권씩 국내에 출판되는 팔레스타인 관련 서적들도 오로지 분쟁과 관련된 글뿐이다. 자연히 우리의 관심사는 분쟁으로 국한되고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없다. 그러나 남북한 문제를 안다고 한국을 아는 것이 아니듯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안다고 팔레스타인을 아는 것이 아니다. 단지 부분을 전체로 왜곡해서 받아들이기 쉬울 뿐이다.


필자도 이런 현실의 피해자였다. 팔레스타인으로 떠나기 전에 관련 서적들을 읽고 나니 머릿속엔 자연스레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파괴된 집에서 살고 있고 이스라엘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폭탄이나 화염병을 들고 하루하루 싸우고 있는 투사들로 그려졌다.


팔레스타인에 가게 되면 분쟁에 휘말려 다치거나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그 속에 들어와 살아 보니 상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팔레스타인인들 스스로가 말하듯이, 팔레스타인은 전 세계에서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이미지와 실제의 괴리가 가장 큰 나라였다.


팔레스타인의 우리집 바로 옆에는 ‘오레가노(Oregano)’라는 이름의 작은 카페가 있었다. 팔레스타인에서 거의 모든 카페는 석재로 인테리어를 하지만 이곳은 나무로 되어 있어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오레가노는 새벽 1~2시까지도 열었기 때문에 퇴근하고 밤늦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소중한 휴식처였다. 주말에 밥을 해 먹기 귀찮을 때 끼니를 때우러 오기도 했고 바쁠 때면 노트북을 가져와 일하기도 했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다 함께 TV를 보는 걸 구경하기도 했던 다양한 추억이 깃든 곳이다.


- 아직도 영업하는 모양이던데,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올해 중으로 가려고 목표를 세우긴 했는데 여비가...


단골이다 보니 카페 주인인 바샤르와 이따금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는 요리가 취미라서 카페를 차렸다고 한다. 이런 가게를 소유할 정도면 경제적 형편이 나쁘지 않을 텐데도 직원을 한 명도 두지 않고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한다. 일손이 부족할 때면 누나의 도움을 받는데, 의자와 테이블을 포함한 모든 가구와 장식을 둘이서 반년 동안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무더운 날씨에 주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으며 요리를 하는 모습은 언제나 행복해 보였다.


- 그냥 정말 작은 동네카페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이런 카페라도 운영할 수 있으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죠. 이스라엘 때문에 일거리가 없어서 전전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으니...


언젠가 외부에서 상상하는 팔레스타인의 모습과 현실이 너무 다르다고 말했더니 바샤르가 공감하면서 사연을 하나 들려주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그는 한 이집트인과 인터넷으로 채팅을 했다.


바샤르가 자신을 팔레스타인인이라고 소개하자 이집트인은 깜짝 놀라며 팔레스타인에서 인터넷이 되냐고 물어보았다. 그러고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면 왜 지금 채팅을 하고 있느냐, 유대인들과 싸우러 안 가냐고 물었다. 외부에 알려진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알기에 바샤르는 자기 의자 옆에 총이 있고 잠깐 쉬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농담이었다.


- 날짜를 계산해 보면 이때가 2차 인티파다 무렵이었던 모양입니다. 인티파다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이 나옵니다.


이미 오래된 옛날이야기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외부에서 팔레스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의 분쟁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에 눈물 흘리면서도 하루하루의 행복을 찾으며 웃고 활기찬 생활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치 문제보다는 가족의 건강과 자녀의 학교 성적에 더 관심을 가지고, 투잡을 뛰며 경제 전선에서 열심히 활약한다. 착한 사람이 있듯이 나쁜 사람도 있고, 못 사는 사람이 있듯이 잘 사는 사람도 있다.


팔레스타인도 그저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일 뿐이다.

-> 제가 가장 강조하는 점입니다. 꼭 기억해 주세요. 이거 하나만 알아도 TV에 나와서 강의하시는 분들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스냅챗(Snapchat)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스냅챗은 날마다 특정 지역을 선정해 그 지역의 사용자들이 사진과 영상을 올릴 수 있게 하는데, 2015년 7월 9일에는 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가 선정되었다.


그래서 세상은 무엇을 보게 되었을까? 이 지역에 대한 선입관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사람들은 춤추고, 웃고, 축구를 즐겼다. ...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전달하는 사진과 영상을 올렸다. 한 젊은 여성은 카피예(kaffiyeh)를 쓰고 이 전통의상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


그러나 다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라마단 동안 시간을 보내기 위해 탁구를 하는 모습, 크나페를 먹을 생각에 흥분하고 있는 모습, 라마단 밤이라는 자막과 함께 춤추고 있는 모습. 그날 트위터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남자도 있었다. 그는 엄청난 열정으로 즉흥적인 (민속춤) 답키(dabke)를 선보이며 「wein a Ramallah」를 불렀다.


인터넷은 열광했다. ... 국제적 반응은 다양했다. 그러나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특히 한 가지 흥미로운 감상이 반복해서 표현되었다. “그들은 그냥 우리와 같네!”

- 『This Week In Palestine』의 기고문에서 발췌



분쟁의 베일 속에 감춰져 있던 팔레스타인 사회는 전통과 모더니즘, 종교와 세속이 공존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 매력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

-> 1년 차에 이미 100여 페이지를 써놓고 보관 중입니다. 무려 8년, 아니 9년 전이네요.


그런데 집필 중에 참고 삼아 국내에 발간된 팔레스타인 관련 서적들을 읽어보니 아쉬운 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거의 모든 서적이 사실관계를 확인해 줄 출처를 표시하지 않고, 이미 오래전에 거짓으로 판명된 주장을 사실인 양 서술하거나 분쟁의 원인과 직결된 핵심적인 용어를 완전히 잘못 번역한 책도 많았다.


분쟁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지금 현재는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책도 없었다.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여주기 위해 구체적인 수치나 최근의 통계자료를 제시하는 책은 한 권도 없고, 국제기구와 시민단체들이 숱하게 쏟아내는 종합보고서는 읽지도 않고 개인의 경험에만 의존해 특정 사건을 일반적 현상으로 부풀리듯이 서술한 책들도 근심스러웠다.


-> 이 점, 대단히 중요합니다. 관광객이 경험하거나 현지인에게 들은 사건성급하게 일반화하면 안 됩니다.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이 없으니 당연히 일반인들이 언론으로 접하는 글도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주요 언론사의 기사나 사설에서도 틀린 내용이 흔히 발견되고, 방송이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정보글에는 오류가 너무나도 수두룩했다.


- 제가 본 팔레스타인 '역사' 관련 '모든' 인터넷 기사, 칼럼에서 (소소하게라도) 틀린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인터넷에 캡쳐본이 떠도는 TV, 유튜브 방송도 마찬가지고, 네이버에 있는 백과사전에서도 오류를 수십 개 봤고요. 그래서 4년차 이후로는 한글로 된 어떤 글도 읽지 않았습니다... 보면 답답하고, 혹시 제가 잘못 기억한 걸까 봐 사실관계를 다시 찾아보느라 시간 낭비하다 보니 힘들어서...


- 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시로 이 글을 한 번 보세요. (제발 언론에 속지 마세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다수의 한국인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고정관념과 편견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못된 인식의 전형적인 예로 팔레스타인인들이 게을러서 못 먹고 산다는 편견을 들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수목이 푸른 광경을 본 후 팔레스타인에서 메마른 황야를 보게 되면 한국인 여행객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물을 끌어다 쓸 만큼 부지런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며 유대인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질책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수자원을 대부분 약탈해 가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에서는 생활용수조차 넉넉지 못하다.


- 가령, "팔레스타인 놈들이 게을러서 그래. 유대인 보고 배워야 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식민 수탈 정책은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수자원 외에도 수많은 농지와 목초지, 광물 자원 등을 약탈하고 팔레스타인 국토의 절반에서 개발을 원천적으로 금지해 황무지를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관세를 갈취하고, 무역이나 기술개발마저 제약한다. 인권유린은 더 심각하다. 이스라엘은 이동과 표현의 자유, 주거권과 같은 기본권을 침해하고 학대와 폭력을 일삼아 반세기 동안 인권 단체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 팔레스타인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유엔 기구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이스라엘을 욕하죠. 이스라엘 인권단체들도 자국 정부를 비판합니다.


그런데도 팔레스타인 사람을 테러리스트라며 삿대질하고 이스라엘은 평화적이라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수십 배나 더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학살당하고 있는데 그들이 이스라엘인을 공격할 때만 테러로 규정짓는 것은 그저 인종차별주의에 불과하다.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1920년대부터 팔레스타인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결정으로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고 사실상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그 결과로 1948년에 유대인들에게 78%의 땅을 빼앗기고 85%의 주민들이 난민이 되었다.


1967년에는 나머지 22%의 땅마저 이스라엘에 의해 불법 점령당해 오늘날까지 반세기 넘게 식민 지배를 받고 있다. 일제강점기하에서 우리 조상들이 국제사회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독립의 지지를 호소했던 역사를 기억한다면, 적어도 식민주의를 찬양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 제가 팔레스타인 책을 쓰기로 한 제1 동기입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신가요?


동시에 우리 사회에 최근 형성되고 있는 반유대주의를 경계하기 위해서도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유대인을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현상은 분쟁의 원인을 몰라서 생겨나는 또 다른 비극이다.


- 양비론 아닙니다.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 책을 읽으셔야 제대로 이해하실 수 있는 내용입니다.


안타깝게도 한 세기나 계속된 분쟁은 대중이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난해하게 꼬여 있다. 게다가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학자들이 쓴 책들도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어느 한쪽을 옹호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과장, 축소, 은폐 혹은 날조한 경우가 많다.


특히, 친이스라엘 학자들은 오랫동안 정부에 협력해 집단적으로 역사를 왜곡해 왔다. 정부의 비밀자료가 공개되어 진실을 알게 된 일부 이스라엘 역사가들이 1980년대 후반부터 역사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여전히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접했던 왜곡된 사관을 신봉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국민들이 최근에 저술한 책 중에서도 이스라엘의 기관지인 마냥 왜곡된 역사를 재생산하는 경우를 발견했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글을 쓴 경우에도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저 두루뭉술하게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간의 대립 구도를 설정해 선악의 문제로 몰고 간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 현실을 확인하였을 때 집필 방향을 조정할 필요를 느꼈다. 처음 계획대로 분쟁을 제외한 생활상을 보여준다면 많은 독자가 분쟁을 대단치 않은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너무나 컸다.


고민 끝에 역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전문 서적을 먼저 집필하기로 결심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며 길어야 6개월에서 1년만 투자하려고 계획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8년이 흘러 버렸다.


- 30대를 책 쓰면서 거의 다 보내버렸습니다.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죠. 그랬다면 책을 안 썼을 겁니다. 막연하게 '올해 안에는 완성하겠지, 올해 안에는 완성하겠지'를 8번 반복하다 보니깐 이렇게 돼버렸습니다.


그동안 7백여 편의 책과 논문, 보고서를 읽고 국내에 단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많은 1차 사료를 직접 연구했다. 글을 퇴고할 때마다 부족한 점을 발견해 퇴고의 퇴고를 거듭했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에는 이르렀다는 확신이 서서 이제야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 고백건대, 마지막 장인 5장의 마무리가 조금 허술합니다. 출간 직전에 출판사와 계약 해지하고 직접 출간하느라 어설픈 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연구 기간이 부족했습니다.


1년은 더 연구하고 냈어야 하는 건데,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되면서 2023.11월 안에 책을 내야 하는 마감기한이 생겼고, 전쟁이 발발해 사태가 심각해진 터라 고민 끝에 부족한 대로나마 출간했습니다. 8년간 수입이 없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도 심각했고요. 언젠가 개정증보판을 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추가된 내용은 브런치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이 건국되는 1948년까지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며 분쟁의 원인을 찾아본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둘 중 누가 분쟁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매우 상세히 연구되고 관련 서적이 넘쳐난다.


그런데 놀랍게도 국내에서는 어떤 책도 이 시기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고, 특히 친팔레스타인 서적들은 거의 모두가 1967년 이후의 식민 지배만을 중점적으로 조명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안보에 위협을 가한다는 이유로 모든 범죄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친서방 국가가 옹호하기 때문에 건국 이전의 역사를 제대로 논하지 않고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어떤 비판도 무의미하다.


- 역사를 알아야 하는 중요 포인트! 식민 지배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친이스라엘파를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서론의 역할을 하는 제1장은 여행기 형식으로 오늘날 식민 지배의 면모를 담았다. 제2장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종교 중심적 역사를 설명하며 세간의 믿음과는 다르게 종교가 분쟁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제3장은 1880년대부터 1914년까지를 다루며,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온 유럽 유대인들의 목적이 평화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4장은 1930년까지로,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분쟁의 무대를 형성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마지막으로 제5장은 1948년까지의 역사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장투쟁을 선택한 이유와 정당성을 살펴본다.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오래된 역사이지만 모든 주제가 오늘날까지도 논쟁적으로 남아 있다. 대립하는 소쟁점은 수백 개가 넘는다. 따라서 여타 교양서적처럼 역사를 요약해 저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담아내서는 안 된다. 이런 행태는 비판적 사고를 불가케 하고, 서로 다른 글의 독자가 만났을 때 논쟁이 아닌 비난만 하게 만든다. 그러면 분쟁은 확산할 수밖에 없다.


- 독자층이 좁아지는 걸 알면서도 글을 길게 쓴 이유입니다. 핵심만 찍 하고 뱉어놓은 글은 반대편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브런치에 간략하게 글을 쓸 때마다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분들이 책을 읽어볼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니...


이 책은 독자가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근거가 되는 내용을 충분히 포함해서 설명하였다. 글이 길어 부담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진실을 분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내용만을 담았다는 것을 믿고 읽어보길 응원한다. 


언젠가 우리 사회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진다면, 처음 기획대로 분쟁이 아닌 일상생활의 모습을 다룬 원고를 마저 완성하겠다.


- 내후년쯤을 목표로 합니다.




지금 보니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네요. 보통 머리말 마지막에 날짜 적고 어디에서 썼다고 근사하게 해 두던데....가령 이런 거 말이죠. 


2024년 1월 2일 서울 남산 타워에서.


저도 해보고 싶었는데 책 낼 때 너무 정신없어서 깜빡했습니다.


아무튼.. 독서 가이드 어떠셨나요? 이번 편은 그냥 소회를 푸는 글이었고, 다음 글에서부터 제대로 된 독서가이드를 선보입니다. 이번처럼 전문을 인용하지는 않고요(그랬다간 분량이...). 대신, 핵심을 짚고 중요한 내용을 골라 풀어쓰는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