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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Nov 02. 2019

단어의 진상 #8

이것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여름날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이

그 어디쯤  

   

노을 지는 남산과 

낙산공원 가로등 불빛 사이

그 어디쯤  

   

금요일 밤 7시와 12시 사이 

그 어디쯤    

 

노릇노릇 익어가는 삼겹살과 

소주 2병 사이

그 어디쯤

     

이것은


살아온 날들의 보잘것없음과

살아갈 날들의 보잘것없음 사이

그 어디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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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진상의 진상>  행복     


당신은 행복한가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 순간부터 행복하지가 않다. 

타인과 비교하고, 현재의 사회적 위치와 재산 상태를 떠올리고, 가족과 친구 간의 관계를 반성하게 된다. 내 인생의 행적을 송두리째 기억의 탁자에 올려다 놓고 꼼꼼히 정산하다 보면 행복해질 수가 없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행복한 이유보다 압도적으로 많아지기 때문이다. 


당신은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습니까? 

이런 질문은 훨씬 쉬어진다. 단지 행복을 느꼈던 순간에 대한 경험을 묻는다면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미세먼지 하나 없는 하늘만 봐도 행복하고, 땀 흘린 후에 하는 샤워가 행복하고, 설익지도 퍼지지도 않게 잘 끓인 라면에 행복하고, 편의점에서 발견한 원 플러스 원 상품에 행복하고, 친구와의 반가운 술 약속이 행복하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었던 과거와,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미래 사이, 그 일상과 일상 사이에서 행복 같지 않은 행복을 즐기는 건 죄가 아니다. 행복한 게 무슨 등급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라는 말은 어쩌면 혁명적인 발상이다. 

행복의 극점과 불행의 극점 사이에서 방황하던 많은 이들이 안식처를 찾았다. 

‘소확행’이 ‘불행 인플레이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도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래서라도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순간이 조금 더 늘어난다면, 그나마 ‘多幸’ 한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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