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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Jan 05. 2020

단어의 진상 #22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노을 지는 야외 탁자에 앉아

고기 한 점 소주 한 잔에

번져나던 그 미소처럼

이 세상 그런대로 따뜻했는지     


아니면

푸른 새벽 홀로 앉아 바라보던 

그 호수 물안개처럼

어둡고 외로웠는지  

    

또 아니면

젓가락 장단 그 노랫가락처럼

부엉새 따라

남몰래 눈물도 흘렸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 어수룩하고 손때 묻은 유품들처럼

무겁고 후회스러웠는지     


세상은

그리 살갑지 않았고

인생은

끝내 야속했지만     


이제는 가서 돌아다보니  

   

당신의 소풍

그래도

아름다웠는지   

   

한 번은

물어보고 싶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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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진상의 진상> 아버지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평생 짊어지고 살아온 가난의 무게를 끝내 벗어나지 못한 그 고구마 같은 인생이 싫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꿈을 버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도전을 포기한 그 미스터리한 안일함이 싫었다. 

그 와중에도 가족을 굶기지 않겠다는 그 집요한 절약정신이 더 싫었다.     


사랑받는 남편이 되고 싶었다.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와는 다른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에도 몇 개씩 고구마를 먹는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머리털이 빠지고 주름이 진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질긴 유전자의 힘에 몸서리쳤다. 

결국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의 그늘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채, 아버지가 되고 있었다.     

 

아버지는 쓰러지신 후, 단 한 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넉 달 만에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두셨다.

그 넉 달 동안 아버지를 바라본 느낌은 효심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민도 아니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저려오는, 서글픈 동지애였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 눈만 멀뚱거리시던, 아들이 불러도 바라보지도 못하는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하셨죠? 나름 아름다웠죠? 그렇죠? 그런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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