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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Sep 27. 2020

단어의 진상 #50

이번 생이 처음이라

버퍼링     


당연히 좌충우돌

업데이트     


그래도 포기할 순 없잖아

리부팅     


가면 갈수록

살면 살수록

와이파이 대략 난감     


하느님

죄송한데

비번 좀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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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진상의 진상> 386     


한때는 신상이었다. 엄청난 용량과 속도를 자랑했다. 

혈기왕성했다. 

일도 사랑도 거칠 것이 없었다. 세상에 대한 열정도 불타올랐다.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아들딸도 낳았다.

일을 하고 일을 하고 또 일을 했다.

비틀거리기도 하고 엎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느려져갔다.

세월이 흐른다고 반드시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의 실수가 두 번 세 번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처지고 굳어가고 밀려난다는 것을 느꼈다.

때로는 꼰대라고 손가락질받는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갈라서고 미워하고 싸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쁜 것은 점점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아직도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도 처음 그때처럼 불안하고 흔들린다는 것이다.

아직도 서툴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아직 전원을 꺼버릴 때는 아니다.

용량이 적은 만큼 지울 것은 지우고 새로 채울 것은 채워야 한다.

느리고 둔한 만큼 더 오래 더 깊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아직도 실수하고 방황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끝없이 신호를 찾아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른다.

누구나 그렇듯, 

이번 생이 처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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