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기는 일생 단 한번 사용하기 위해 태어난 물건이다.
평소에는 현관문 앞이나 복도 끝을 어두커니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빨간 페인트로 온 몸을 칠갑한 채 아무리 서 있어도,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눈길 한 번 받지 못한다.
그야말로 존재감 제로다.
하지만 오직 한 번, 아주 위급하고 중대한 상황에서, 속 안에 든 모든 것을 다 뿜어내고 장렬히 전사한다.
오직 그 한 번을 위해 소화기는 존재한다.
존재감 제로인 사람들이 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있으나마나 한, 그래서 없어도 될 것 같은, 때로는 없으면 좋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잘못 본 것이다.
아무리 무능력해 보이고 무기력해 보여도 그 속에 얼마나 치열한 노력이 있는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
그 속에 얼마나 절박한 꿈이 있는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
지금 당장은 복도 끝에서 먼지나 뒤집어쓰고 있는 붉은 쇳덩어리처럼 보일지라도 그가 얼마나 빛나는 존재였는지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얼마나 위대한 힘으로 세상을 지켜 주었는지 아주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