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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Jan 12. 2020

단어의 진상 #23

내가

세상을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넌 벌써

완전히 새됐을 거다     

 

니가

내 어린 새끼들을 날로 먹기 전에        

  

내 살과 뼈를 탐하고

날개마저 꺾기 전에    


창자와 항문까지 도려내고

사지를 잘라 오독오독 씹기 전에     

     

그 기름지고 탐욕스러운 입을

함부로 놀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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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의 진상> 닭     


세상을 살다 보면 억울할 때가 있다. 

밤새워 일하고 죽을 만큼 노력했는데 마지막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있다. 

단순히 결과 때문이라면 그래도 덜 억울하다. 그런 노력 자체를 무시당하거나 다른 사람의 성과로 둔갑하는 경우에는 눈이 뒤집힌다.           


그런데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갑질을 당하고도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 자신의 아이디어를 선배에게 빼앗긴 후배, 궂은일을 다하고도 항상 낙하산에 밀리는 조직원, 작품을 도용당한 무명작가……. 뭐, 말하자면 부지기수다.       

    

좋다.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토사구팽 하더라도 최소한 무시와 조롱은 하지 말아야 한다. 누명은 씌우지는 말아야 한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재주 부리던 곰이 주인을 칠 수도 있다.      


인생은 돌고 돌고 역사도 돌고 돈다. 

불공정에서 오는 분노, 억울함에서 솟아오르는 투쟁심, 모멸감으로 불타는 복수심……. 

이런 에너지가 세상을 뒤집는다. 오뉴월에도 함박눈을 내리게 한다.     


닭고기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가축이다. 요리법도 참 다양하고 안 먹는 부위가 없다. 누구나 즐긴다는 이야기이다.         


다들 맛있게 먹었으면, 굳이 미안해할 것까지는 없더라도, 무시하고 놀리지는 말자.

‘닭대가리’ 같은 말은 하지 말자. 

바이러스니, 조류 인플루엔자니, 수상한 세상이다. 

닭들의 불타는 저주에 혹시 당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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