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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Mar 15. 2020

단어의 진상 #27

그냥

햇살 눈부셨던 

봄날 하루라고 하자


그 봄날에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하자  


그 바람에

떨어진 벚꽃 한 잎이라고 하자

   

초록이 우거지고

낙엽이 지고

하얀 눈이 쌓여도

지워지지 않는 희미한 자국이라고 

하자, 이제는 말라버린 햇살과 바람과 꽃잎의 흔적만 남은

색 바랜 화석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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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진상의 진상> 첫사랑     


첫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화창한 봄날이다. 

파란 하늘과 살랑거리는 바람에 벚꽃향기가 흩날리는……. 

아니라고 우겨도 소용없다. 그게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상관없다. 

모든 첫사랑의 시작은 봄날이다.        


첫사랑의 끝은 언제나 눈 오는 밤이다. 

눈이 펑펑 오는 날, 차마 마주 볼 용기가 없어, 가로등 불빛에 흩날리는 눈을 애써 바라보는 것이다. 

첫사랑의 끝은, 눈이 얼굴 위로 마구 흩뿌리는 그런 춥고 어두운 겨울밤이다. 

아니라고 우겨도 소용없다. 

모든 첫사랑의 끝에는 눈이 내린다.          


모든 첫사랑은 아름답다. 

처음이라서 아름답다. 영원하지 않아서 아름답다. 

그리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라서 아름답다.     

오래오래 세월이 흐르고도 문득, 모든 걸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파란 하늘에 벚꽃 한 잎 날리면 문득, 그 희미해진 기억이 꿈틀거리는…….

아 그랬었지, 그때는 참……, 하고 한 번 미소 지을 수 있어서 아름답다. 

잊을 수 있어서, 그리고 잊히지 않아서, 그래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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