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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Oct 24. 2019

단어의 진상 #1

뭐라고 말도 못 하고

참고 또 참았다가

그래도 그냥 자기 뭣해서

소주 한잔하고 누웠는데

니가 왜 

울고 지랄이야

눈물 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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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진상의 진상>  비 


비는 다수의 물과 소수의 화학물질, 이를테면 암모늄, 질산, 이산화질소, 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만 안다면 그것은 겉만 아는 것이다. 석굴암을 보고 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수준이다. 

사실, 비에게는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비는 천부적인 예술적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했다. 섬세하고도 광기 어린 그의 예술성이 발휘될 때마다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날이면 술에 취한 채 밤하늘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눈물을 쏟아내었다. 쏟아지는 그의 눈물은 사방으로 흩날렸고 애꿎은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그래서 비는 필연적으로 술을 동반하고 눈물을 동반한다. 

비가 오는 날, 왠지 울적하고 술이 생각나면 그냥 즐겨라. 그것은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다. 비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 끝나버린 사랑이 문득 떠오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눈물이 흘러내리면 그냥 흘려라. 그것은 당신이 못나서가 아니다. 비 때문이다.

비가 오는 날, 삶은 어깨를 짓누르고 세상에 혼자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소리 내어 울어버려라. 당신이 지는 것이 아니다. 비 때문이다.     


누구의 아버지로, 누구의 아내로, 누구의 아들로, 누구의 동료로 사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 현실의 무게를 억지로 버티면서 참지 말자. 나의 감정을 속이지 말자. 참다가, 참다가 그래도 힘들면 한 번만이라도 실컷 폭주하자. 괜찮다. 모두 그놈의 비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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