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진열장 앞에서 나는 항상 혼란에 빠진다.
결정 장애라는 고질병이 도진다. 외우기도 힘든 이름표를 보고 그 맛까지 상상해야 하다니.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허락된 가짓수를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허겁지겁 담고 나면 괜히 뿌듯해진다. 이 넘치는 기쁨.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밀려오는 찜찜함. 근데 이게 무슨 맛이지?
31가지 맛이라니. 이쯤 되면 욕망의 절정이다.
도대체 누가 이토록 다양한 맛을 원한 것일까.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만족할 것인가. 디저트 한번 먹자고 세상의 온갖 희귀한 열대과일을 다 끌어 모아 이 야단법석을 떨어야 하는 것인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만족을 모른다. 하나를 얻으면 또 하나가 생각난다. 한번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멈추기 쉽지 않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욕망 중독은 끝없는 경쟁을 부르게 되고, 그 끝은 승자와 패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리고는 망가지고 피폐해진 세상이다.
또 다른 문제는 욕망의 결과가 승자에게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욕심을 부려 과하게 끌어 모은 뒤죽박죽 결과물의 맛이 생각보다 달콤하지가 않다. 짬뽕 맛 아이스크림이라고나 할까.
단지 욕망을 채우려는 욕망만 있을 뿐이다.
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는 순수한 하얀 맛.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진정한 만족을 느끼고 싶다면 비울 수 있어야 한다.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욕망의 끝맛은 생각보다 달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