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진상 #35

by 최성일

거친 거리에서 살아 돌아와

짧은 봄 햇살에 몸을 뉘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팔 다리 가슴 발


젖은 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나

아니면


울고 있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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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진상의 진상> 빨래


겨우내 입었던 옷들을 세탁소에 맡겼는데 몇 주가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 세탁소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세탁소의 실수로 내 옷들을 다른 사람이 찾아갔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 옷들을 다시 찾긴 했지만 그 옷들이 없는 며칠 동안 괜히 불안하고 허전했다.

그 옷들이 계속 생각났다.


그 싸구려 낡은 옷들에 왜 그리 집착했는지 나중에야 깨달았다.

새 옷들과는 바꿀 수 없는 나의 분신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시간을 함께한, 추억과 고민과 노동을 함께 견뎌왔던 분신이기 때문이었다.

보풀이 일고 색이 바래지고 무릎이 튀어나왔더라도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 빨래를 널었다.

지난 일주일을 씻어서 널었다. 나를 널었다.

지나온 시간들이 후회스럽고 초라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시간들이었다.

그저 그 후회들을 꾸역꾸역 씻어내고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땀과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일어서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 잘 버텼다. 수고했다 토닥토닥. 다시 시작하면 되지. 그게 인생이지.


햇볕이 따사롭다. 바람에 내가 흔들거린다. 몸에서 베어 나오는 물기…….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기가 바람에 뚝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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