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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Jun 28. 2020

단어의 진상 #40

정말 무서운 놈입니다


언제부턴가 그놈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날마다 나를 

길거리로 내몰고는

일거수일투족을 

나의 모든 행적을 

지켜봅니다.


정말 지독한 놈입니다


하루 종일 쫓기다가

지쳐 쓰러지는 밤이면

놈은 조용히 다가와서 속삭입니다

이렇게요...     


오늘도 걸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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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기          


<진상의 진상> 만보기     


만보기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한 이후부터 정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숫자의 압박이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친구들과 비교하며 경쟁을 부추기고 돈까지 주겠다며 유혹한다.

그게 뭐라고. 숫자가 뭐라고.    


우리는 숫자의 압박 속에서 살고 있다. 

어려서는 시험 점수와 등수와 등급에 시달렸다. 숫자들이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 살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점수로 직장의 등락을 가리더니, 직장 내에서도 호봉과 직급과 인사고과가 따라붙는다. 내가 다니는 방송국에서는 시청률이라는 무시무시한 숫자로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인생을 평가하는 숱한 숫자들. 

연봉, 아파트 실거래가, 통장 잔액, 신용등급, 대출한도, 하다못해 맥박과 혈압, 콜레스테롤 지수까지 숱한 숫자의 압박 속에서 살고 있다.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만보기의 걸음수가 나의 건강의 질을 측정할 수 없듯이, 숫자들이 나의 인생을 측정할 수는 없다. 

나의 고민과 노력과 꿈과 행복을 평가할 수는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숫자의 압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하지만 만보기 애플리케이션을 지워 버릴 수 있듯이,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숫자의 압박에 당당하게 맞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숫자가 도대체 뭐라고. 

내 인생은 숫자가 아니라 '내가' 평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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