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수 (1966.5.9 ~ 2020.10.16)
처음 녀석을 만났을 때 놀란 것은, 파리 한 마리 못 잡을 것 같은 그놈의 이름이 ‘복수’라는 것이었다.
비쩍 마른 몸매에 새까만 얼굴, 선한 미소가 인상적인 순천 촌놈 복수는, 수업이 비는 틈에, 학교 담벼락 밑 자신의 자취방에 몰려든 친구들에게 라면 끓여주기 바빴던 착한 놈이었다.
1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온 녀석을 병문안 갔다가 또 한 번 놀란 것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녀석의 몸이 아니라, 의외로 하얀 얼굴과 맑은 눈동자였다.
그의 피부색이 원래 까만 것이 아니었다. 오랜 가난과 노동과 번민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연락이 두절되었던 30여 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을 그의 인생, 그리고 야속한 마지막 운명 속에서도 그는 변함없이 속살이 하얗고 눈이 사슴처럼 맑은 친구였다.
그가 쓰러진 후 생업과 가족을 뒤로한 채, 밤낮없이 병실을 지키며 동생을 돌보았던 친형은 마지막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육지의 불편한 시선과 득실거리는 바이러스를 피해서 동생을 데리고 남쪽 외딴섬으로 들어간 것이다.
집을 짓고 커다란 물탱크로 고깃배도 만들었다. 동생이 맑은 공기와 햇볕 속에서 나아지기를, 바다수영을 통해 굳어진 근육이 회복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형의 바람과는 달리, 녀석은 제 힘으로 수영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그 섬에서 눈을 감았다. 따스한 10월 햇볕 아래,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눈을 감았다.
세상에 복수하고 싶은 일도 많았겠지만 끝내 화해를 택했던 복수는 그 섬에 영원히 남았다.
속세의 연이 닿지 않는 곳. 미련도 후회도 슬픔도 없는 곳.
온통 푸른 바다로 둘러싸여 파도소리만 들리는 그곳에서 그는 그렇게 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