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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일 Jul 12. 2020

단어의 진상 #42

여기 있어도 좋다고

그냥 있어도 좋다고

빗소리 웃으며 종알거린다     


가슴 뛰는 시절은 어느새 가버렸지만

다시 오지 않는다 해도 슬프지 않을 나이     


그래도     


이렇게 그냥 좋다고

무심하게 그냥 좋다고    

 

빗소리 도란도란 이 밤에

혼자 멍하니 밤하늘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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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진상의 진상> 자화상     


비 오는 날, 나만의 아지트인 옥탑방에 앉아 있으면 빗소리가 날것으로 들린다. 

알루미늄 패널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 

거센 비바람이 요란하게 불 때는 지붕이 날아갈까 걱정이 될 정도로 시끄럽지만, 이렇게 잔잔하게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편안해진다.     


폭풍우 몰아치는 격정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가슴 뛰는 흥분과 웃음이 터지는 행복이 이제는 싫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별일 없이, 큰 행복도 큰 불행도 없는 평화로운 ‘정전 기간’이 좋다.    

 

하늘 맑은 날, 옥탑 마당 의자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는 것. 

이렇게 도란도란 빗소리 들으며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 

행복도 불행도 아닌, 기쁨도 슬픔도 아닌 그냥 평화로운 순간이 좋다.     


앞으로 살아갈 날도 많이 남았고 짊어진 짐도 가볍지 않다. 

앞으로 어떤 도전과 실패가 나를 기다릴지 알 수가 없다. 어떤 고통과 슬픔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만이라도, 그냥 이렇게 무심하게 앉아서, 행복도 불행도 아닌, 기쁨도 슬픔도 아닌, 어제도 내일도 아닌 이 순간을, 이 무심하고 가치중립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게는 소중하다. 

빗소리 도란도란, 멍한 이 밤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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