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속 어둠에서 빚어낸 에메랄드빛 보석
나비의 삶은 흔히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에서 시작해 화려한 날갯짓으로 완성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자연의 이면에는 우리의 얕은 상상을 뛰어넘는 기이하고 치밀한 생존 방식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의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쌍꼬리부전나비의 일생이 바로 그렇다. 이 귀한 나비는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결코 성충이 될 수 없다.
암컷이 나무를 누비며 산란처를 찾는 과정부터가 각본 없는 드라마다. 어미는 무턱대고 알을 낳지 않는다.
산란지를 맴돌며 마쓰무라밑드리개미와 눈을 맞추고, 마치 비밀스러운 교감을 나누듯 소통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조력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심스럽게 알을 낳는다.
앙증맞은 알에서 1령 애벌레가 무사히 부화하면, 기다렸다는 듯 마쓰무라밑드리개미가 다가온다. 개미는 갓 태어난 이 연약한 생명체를 자신의 둥지로 소중히 데려간다.
어두운 나무속 둥지에서 개미들과 뒤엉켜 있는 애벌레를 처음 마주하면, 주변의 나무 부스러기와 섞여 칙칙하고 지저분한 색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시선을 낮추고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투박한 겉모습 너머로 묘하게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녹색이 은은하게 비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곤충 세계의 흔한 포식자와 먹이라는 섭리를 비웃듯, 이 애벌레는 개미의 철저한 보호를 받으며 자라난다.
위협을 느끼거나 보살핌이 필요할 때면 꼬리 부분에서 숨겨두었던 촉수같은 돌기(Tentacular organs)를 불쑥 내민다. 이 돌기에서 은밀하게 분비되는 화학물질에 이끌려 개미들은 홀린 듯 애벌레 주변으로 빈틈없이 모여들어 철통 같은 방어벽을 친다.
개미는 애벌레의 등을 더듬이로 다정하게 두드리고, 애벌레는 등판의 작은 샘에서 달콤한 감로를 내어주며 보답한다. 놀랍게도 이 나비는 애벌레 시기 전체를 개미가 입으로 전해주는 영양교환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완벽하고 극단적인 진화적 의존이다.
길고 끈질긴 보살핌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번데기가 되는 순간, 녀석은 또 한 번 경이로운 장면을 선사한다. 애벌레 시절 칙칙함 속에 숨겨두었던 그 에메랄드빛이 초기 번데기가 되면서 온전하고 투명하게 드러나, 마치 숲 속에 감춰진 작은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고요한 기다림의 시간을 품은 이 단단한 에메랄드빛 번데기를 거쳐 비로소 우화의 순간이 다가오지만, 아름다운 동화는 여기서 스릴러로 돌변한다.
나비로 우화하는 즉시 둥지 안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는다. 애벌레 시절 개미를 안심시키던 마법의 화학물질이 끊기면서, 개미들은 갓 태어난 나비를 외부 침입자로 간주하고 무섭게 공격하기 시작한다.
나비는 자신이 빠져나온 번데기 허물에 개미의 시선을 끄는 페로몬을 남겨두고, 뒷날개 끝의 가느다란 두 개의 미상돌기와 무성한 털을 미끼 삼아 개미의 공격을 교란하며 날개가 굳기 전에 필사적으로 둥지를 탈출해야만 한다.
멸종위기종이자 특별한 생태를 가진 이 나비를 만나기 위해 아주 오랜기간 노력을 했었지만 자연스럽게 만나지지는 않았다. 쌍꼬리부전나비 성충의 모습을 관찰하기가 유독 어려운 이유는 이들의 독특한 생태에 있다.
어두운 둥지에서 개미의 철통 보호를 받으며 숨죽여 지내던 애벌레 시절과 달리, 무사히 탈출에 성공해 성충이 된 수컷들은 황혼 녘이 되어서야 숲 가장자리나 나무 꼭대기를 활발하게 날아다니며 치열한 영토 전쟁을 벌인다.
마쓰무라밑드리개미와 얽혀 있는 이 복잡하고 극적인 생명망은 숲이 수많은 생명체가 치열하게 교감하는 유기적인 우주임을 증명한다.
개미 없이는 나비도 존재할 수 없듯, 어느 한 종의 위기는 곧 연결된 모든 생태계의 위태로움을 의미한다.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고 해 질 녘의 하늘을 치열하게 비행하는 이 신비로운 자연의 고리가 부디 우리 곁에서 오래도록 이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