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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냥이 Oct 09. 2022

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돼

사소한 이야기



그래더북 - 2022. 10


요 며칠 몸이 좋지 않았다.

며칠째 입안에 난 구내염이 없어지질 않아 음식이 닿을 때마다 곤욕이었다. 평소 같으면 패드를 들고 어디로든 나갔을 텐데 오늘은 아이들을 보내고 다시 침대에 누워버렸다. 머리도 감고 화장도 했는데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누워있었다.

아파도 일어나야 했다. 첫째 하교 시간도 되었고, 집안도 엉망이었고 무엇보다 오늘 안으로 내가 그렸던 열두 곳의 독립서점 달력 시안을 만들기 위한 주문 수량 체크를 해야 했다. 달력 시안과 사이즈, 용지, 금액, 주문 최소 수량 등등…

궁금해하실 내용들을 두서없이 일단 적어본 후 필요한 내용들만 다시 추려내 정리한다.

음,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열두 곳의 서점에 디엠을 보낸다.




서점 그림을 그렸을 때 유일하게 아무 피드백이 없었던 곳이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나중에 여쭤봐야겠다.’ 생각만 하다 이제야 연락을 해본다.

역시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며칠을 고민하고 그린 나에게 그 서점이 해준 한마디는

고맙다거나 수고했다는 말이 아닌, 다른 곳은 이쁜데 자기네 서점은 왜 이렇게 어둡냐는 거였다.

내 그림들 중에 그냥 그린 그림은 없다.

가보지 못한 곳이면 로드뷰로 주변 느낌까지 확인하고 구도와 분위기를 결정한 후에 그린다.

그런데… 그 서점 생각엔 내 그림이 다른 서점 그림들에 비해 너무 성의 없고 별로였던 걸까?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내가 좋아서 한다.

 피곤을 달고 살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그림이 부정당했다는 생각, 성의 없는 서점의 태도에 눈물이 났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

좋은 일이 열개가 있었는데,  이 한 가지의 속상한 일로 내 마음이 휘둘리면 안 되겠지. 상처받고 슬퍼할 시간에, 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힘을 쏟기로 하자.

10월 초를 예상했던 달력 스케줄도 한 장 공석이 생기며 자연스레 변경되었다. 나머지 달력 한 장은 내 그림을 아껴주는 곳과 작업하기로 결정했고, 조금 이르게 나올뻔했던 2023년 달력은 숨 한번 고르고 간다.

그 덕에 조금 더 나은 달력업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그림은 달력의 마지막 작업이 되었던

내 그림을 아껴주시는 위례 독립서점 <그래더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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