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독립서점을 그려도 될까요> 1편을 마치고 번아웃이 와버렸던 것 같다.2주간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만나고 이곳저곳 혼자 바람도 쐬러 다녔다.
번아웃이 올 수 없는 장치를 곳곳에 심어놓아서 더 이상 쉴 수 없어 할 수 없이(?) 다시 컴퓨터에 앉았다.
그 장치들에는 달력, 전시, 책 작업 등이 있다.
가장 급한 것은 시즌 상품인 달력.
올 초부터 10개월간 동네책방을 그렸다.
중간중간 다른 작업들과 전시, 글쓰기 등을 병행하면서 책방을 그려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총 17곳의 서점을 그렸고, 그중 표지 포함해서 13곳의 서점이 들어간 2023년 달력이 완성되었다.
나의 10개월의 여정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이렇게 결과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1년짜리 프로젝트였다.
그림들은 기한 내에 완성했는데 달력을 작년처럼 탁상으로 만들 것인가 벽걸이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형태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올해도 작년처럼 탁상달력으로만 했으면 몸과 마음이 편했을 텐데, 쓸데없이 예쁜 우드 족자 달력에 꽂혀버린 것이 문제였다.
족자형은 기본 단가 자체가 탁상형의 두배이고 탁상달력 제작 업체는 1부든 30부든 300부든 수량을 마음대로 정할 수가 있는데우드 족자 달력은 제작하는 업체를 찾기도 힘들뿐더러 있더라도 정해진 단위로만 주문할 수가 있었다.
샘플 한부만 먼저 제작하고 싶다고 했으나 거기에 따른 달력 AI 파일을 업체가 제공해야 하기에 선입금을 해야 만들어줄 수 있다고 한다.기껏 파일 공유해서 샘플 만들어줬는데 안 하겠다고 잠적한 업체들도 분명 있었을 테니 이런 조건이 붙었겠구나 싶다.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족자형 달력에 꽂혀버렸기에 앞뒤 재지 않고 일단 선입금을 해버렸다.
애초부터 몇 부를 할지가 고민이었지 만드느냐 안 만드느냐가 문제가 아니었기에.
우여곡절 끝에 담당 디자이너와 파일을 주고받고 열흘을 기다린 후에 샘플을 받았다.
(나름 나도 일러스트 CS를 다룬 지 15년이 넘었건만 현역 디자이너가 쓰는 용어와 툴을 몰라 버벅댔다.)
여기… 인쇄 맛집이었다.
단가가 높은 만큼 종이의 질도 좋고 색감도 너무 잘 나왔고 포장상태도 좋았다. 과정은 고되었으나 그간의 고생을 다 날려버릴 만큼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왔는데, 문제는 이 달력이 보기 드문 실험적인(?) 레이아웃을 채택한대다가 3만 원이라는 다소 높은 금액에 판매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앞면이 숫자, 뒷면이 그림이다. 스프링이 아닌
족자형식이라 뒤로 넘겨가며 볼 수 없고 달이 지나가면 뜯어서 뒷면을 포스터로 사용하는 형식)
인쇄소의 기본 단가 자체가 높다 보니 택배비와 포장 등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금액이지만, 달력에 누가 그렇게 큰돈을 쓸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나의 텀블벅 여정이 또 시작되었다.
올해 텀블벅은 우당탕탕 그 자체였다.
지인들께 부탁하지 않더라도 올해엔 분명 인스타와 전시를 통한 잠재적 고객들이 있을 거라는 통계 따위 없는 문과적인 믿음.
나의 문과에만 최적화된 능력은 여러 문제를 야기시켰으니.
뼛속까지 산수 머리가 없는 사람인지라 목표금액을 너무 높게 책정 버리고 만다.
이 정도는 돼야 최소 제작수량, 텀블벅 수수료, 택배비와 포장비가 감당이 되겠다해서 설정했는데 뒤늦게 계산을 잘못했다는 걸 깨닫고 수정을 해보려고 애써보았으나 한번 심사가 통과된 목표금액은 수정이 안되더라.
주먹구구도 이런 주먹구구가 없다.
그렇게 쫄깃한 보름이 지나고 정말 감사하게도 그 높은 목표금액을 아슬아슬하게 달성해서 후원자들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8할은 자나 깨나 텀블벅 걱정을 지켜봐 온 지인분들의 힘이 클 거다.
그렇기에 올해는 더더욱 텀블벅을 안 하고 싶었다.
알면 사줘야 하는 부담. 혹은 사주고 싶은 마음을 알기에.
난 텀블벅 알람만 몇천 개이고 목표금액 천 프로는 가뿐히 넘기는 유명 작가가 아니다.
잊지 않을 거다.
탁상달력을 10부, 20부를 턱턱 사주시곤 나의 서점이 작아 이것밖에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서점 대표님들.
달력 걸 공간을 일부러 만들어 놓고 후원해준 지인들.
나의 노력이 조만간 복리가 되어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해주는 친구들.
조용한 곳에서 말없이 응원해주는 모든 사람들.
이 모든 이들이 나에겐 감동이었다.
나의 인건비는 상상도 할 수 없던 1년의 여정 동안 나는 돈이 아닌 사람들을 얻었다.
그들 덕에일련의 삽질들이 모여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