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별로 하는 무대 체험 행사 포스터를 제작하는데 무대 감독님께서 감사하게도 나의 일러스트로 홍보용 포스터를 제작하고 싶다고 하셨고 몇 번의 미팅 끝에 1월 첫째 주까지 열두 장의 일러스트 작업을 완료하기로 했다. 작년 연말은 (돈과 전혀 상관없이) 많이 바빴다. 그림 작업에, 달력 제작과 텀블벅 진행, 브런치 당선 관련 미팅과 서점 전시 진행까지…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덧 마감일이 몇 주 앞으로 성큼 다가와 버렸고, 작업 진행은 얼마 하지도 못했는데 겨울 방학이라는 무시무시한 것이 찾아왔다. 방학 = 나의 작업 시간이 반의반쯤으로 줄어듦이라는 관계가 성립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정말 중요한 일을 제외하고는 양가 부모님께 손을 벌려본 적이 거의 없다. 워낙 바쁘신 것도 그 이유이고, 에너자이저 아들 둘을 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일주일 후로 닥쳐온 마감 앞에는 장사가 없었다. 방학만 아니어도 작업 시간을 좀 빼보겠는데 도저히 그 시간에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처음으로 친정 부모님께 며칠만 아이들을 봐달라는 부탁을 드렸고 아이들은 엉겁결에 엄마·아빠의 통제를 벗어난 뉴월드를 맛보게 되었다.
나는 비장한 각오로 스터디카페에 입성해 시험을 앞둔 학생들과 자격증 공부 중인 사람들 틈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스터디카페는 꽤 집중이 잘 되는 장소인지라 평소에도 그림 작업을 할 때 자주 찾는 곳이지만, (글 작업을 할 때는 타자 치는 소리 때문에 집과 카페를 주로 이용한다) 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서 작업을 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은 길어야 4~5시간이었다. 하지만 온전히 혼자가 된 호사를 누리게 된 나는 처음으로 <당일권>이라는 것을 끊어보았다.
최대 12시간까지 머무를 수 있는 당일권은 우리 집 앞 스터디카페 기준 단돈(!) 13,000원. 와 싸다 싸. 아이들 케어와 집안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진 나 또한 열두 시간 그림만 그리는 뉴월드를 맛보게 된다. 카페에서처럼 BGM이 깔리는 곳도 아니고 타자기 소리까지 소음으로 느껴지는 스터디 카페에서의 열두 시간. 적막하고 고요해서 더 행복한.
그림만 그리는 것이 이렇게나 행복한 일이구나. 손목에 파스를 붙여가며 작업했지만, 육아의 세계로 출근 없이 그림 작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기쁨에 순간순간 울컥할 정도였다.
아이들이 없어서(!) 기쁜 점은 맘껏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돌밥돌밥(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 하고)에 지친 세상의 밥 하는 엄마 아빠들은 공감하지 않을까?
그 며칠간 나는 삼시세끼로부터 자유로움을 맘껏 만끽했다. 이런 호사 정도는 한 번쯤 누려볼 만하지 않은가?
늘 6시에 남자 셋을 위한 저녁상을 차린다. 그런데 그 저녁상은 6시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침부터 그날의 메뉴를 생각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미리 준비한다. 만약 오후 4시까지도 저녁 메뉴가 떠오르지 않으면 불안감에 휩싸이곤 한다. 그 일련의 반복된 행위를 며칠 동안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또한 나에겐 큰 기쁨이었다. 저녁을 차리는 대신 퇴근한 남편과 식당에 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함께 파는 곳인지 체크하지 않고 온전히 우리가 좋아하는 메뉴를 골라서 반주까지 곁들인다. 기분 좋게 알딸딸한 채로 들어와서 그림 작업을 마무리하거나 책을 읽는다. 아이들의 숙제를 체크해주지 않아도 되고 같이 놀아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우리만의 시간. 며칠간 그 호사를 누려보았다. 물론 호사는 우리만 누린 것이 아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부모와 학원, 숙제로부터 해방된 일주일이었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라면 안 되는 것도 모두 되는 매직이 펼쳐지니까,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졸라서 쟁취했을 터다. 평소 보지 말라고 했던 채널도 봤을 것이고 허락한 시간 이상으로 게임도 했을 것이고, 너무 놀지 말라고 들려 보낸 문제집은 설렁설렁 풀었을 것이다. 부모도 자유를 누렸고 아이들도 자유를 누렸다.
다만 그것은 나의 부모님의 희생과 맞바꾼 자유였다.
손주들 삼시세끼를 고민했을 것이고, 잘 안 먹는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걱정했을 것이고,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외출할만한 적당한 장소를 찾아보셨을 것이다. 게임만 하지 않도록 계속 지켜보셨을 것이고,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게 이부자리를 정성껏 펴주었을 것이다. 혹시 잘 때 춥지는 않을까? 평소보다 집안 온도에 더 신경 쓰셨을 것이다.
자식들에겐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고 실제로도 기쁜 마음으로 손주들을 돌봐주셨을 테지만, 본인의 자유시간을 포기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일주일을 보낸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얼마 후면 있을 나의 수술과 입원 기간 또다시 아이들은 나의 손길을 벗어나 시부모님과 함께 며칠을 보내게 될 것이다. 부모님의 희생을 당연해하는 내가 되지 않길. 잘 회복해서 또다시 반복되는 일상 자체를 감사해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