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감정이 지속되었고 나는 그 기분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질 못했다.남편에게 내 우울함의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았으나 공감해 주지 않았다.충분히 극복 가능한 감정이고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왜 내 기분에 공감 해 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공감이 되지 않는데 공감을 해주는 척하면 자기도 힘들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섭섭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곧 수긍이 갔다. 기분 나쁜 일을 상대방에게 이야기해서 해결될 것은 없기에 아예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고 그 감정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지도 않는 남편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남편은 회사에서 있었던 일, 본인의 힘든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해는 갔으나 어쨌든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인 것이고, 나는 이야기 할 곳이 필요했다.
그러나 내 감정과 상황을 곱씹어 보다가 이내 그 마음을 접었다. 남에게 나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잡히지 않던 우울감이 실체가 되어 멀리 날아가 소문이 되고 곧 후회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 우울감을 사람에게 쏟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 또한 이성적인 남편과 살면서 알게 모르게 동화가 된 모양이다.
가만히 있으면 생각을 멈출 수가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 보기로 했다.
글과 그림 외에 해보지 않았던 뭔가에 에너지를 쏟기로 했다.
그 뭔가는 ‘외국어’, 그중에서도 ‘일본어’였다.
올가을 아주 오랜만에 일본 여행을 계획했는데, 마침 이른 시일 내에 배운 것을 적용해 볼 기회도 있으니, 명분도 있겠다 겸사겸사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설렁설렁 배웠던 이후로는 한 번도 일본어를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마음만은 열정 만랩이었으나 몹시도 낡은, 내 머리는 히라가나에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외우는 것을 멈추면 다시 마음이 소란해지기 시작했기에 외우고 또 외웠다.
짧은 시간 벼락치기의 결과 히라가나는 마스터했고, 가타카나는 볼 때마다 새로우나 어쨌든 눈에 많이 익혔다. 간단한 인사말은 읽고 쓸 줄 알게 되었고, 히라가나로 쓰여 있는 말들은 더듬더듬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간판과 메뉴판 등은 대부분이 가타카나와 한자로 이루어져 있기에 일본 여행에 있어서는 히라가나는 크게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이 나의 소란한 마음도 잠재우고 더불어 그 우울한 감정도 점점 옅어지게 해주었다.